출처 : 파주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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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오전 11:41:48 입력 |
뉴스 > 가볼만한 곳 | (2)잊혀져가는문화를찾아서 파주향토유적12호운천군묘 |
** 운천군 이인(李忄寅)의 이름 인(心+寅)자는 마음심(心) 변에 寅자 이지만, 컴퓨터에는 그런 한자가 없어서 일반적으로 이인(李寅)으로 쓰지만, 이인(李 忄寅) 이렇게 표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운천군은 조선왕조의 중흥을 이룩한 성종대왕의 14남 으로서 휘는(인), 시호는 소회(昭懷)이다. 운천군은 숙의(淑儀)홍씨(洪氏)소생의 7왕자 완원군(完原君),회산군(檜山君),견성군(甄城君),이익양군(益陽君),경명군(景明君),운천군(雲川君),양원군(楊原君)과 3옹주 혜숙(惠淑).정순(靜順).정숙(靜淑)중의 6남이다.
운천군은 1490년 11월 임인일에 태어나 1524년 5월14일, 향년 35세로 별세하였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성종대왕은 빈천의 호를 내리고 그 뛰어남이 남달라 9세에 운천군으로 봉하였다. 그러나 연산군의 난폭한 통치와 왕자들에 대한 박해로 날마다 근심걱정으로 세월을 보내다 중종반정으로 시름을 거두고 종사에 크게 공헌해 갈즈음 장년의 한창 나이에 별세했다.
중종대왕도 3일간 정사를 폐하고 애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운천군은 형조참의 증 좌찬성 인손의 딸 안동권씨와 혼인하여 4녀만을 두었다. 사위는 사헌부 감찰 이구, 신천군수 이종효, 종묘서령 박순년, 선감주부 이경종 등이고 후사가 없어 형인 완원군의 아들 수례(수례:후에 윤천군으로봉함)를 계자로 삼았다.
따라서 오늘의 운천군 후손은 혈통적인 측면에서는 완원군의 후손이기도하다.
운천군의 계자인 가덕대부 이천군은 남달리 뛰어난 인품과 극진한 효심을 지녔다.
아버지 완원군과 어머니허씨 사이에서 2남 2녀중 차남으로 1508년 12월 계유일에 태어나 1568년 6월 임진일에 별세하여 향년 61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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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 기자(tlwhguscjf.@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