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축구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① ~ ⑤
미국축구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①
■ 미국인들은 축구를 싫어한다?
미국 축구는 2002 월드컵 8강에 이어, 2006 월드컵에도 본선 진출권을 따냄으로써 5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이뤄냈다. 또 여자축구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다.
부상하는 미국 축구의 힘은 어디에 있는지 미국 현지에서 스포츠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전직 스포츠 기자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다. 이 칼럼은 5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2005년 8월 한국에 갔을 때다. 때마침 필자가 쓴 논문이 대만에서 열리는 국제 학술회의에 채택돼 개최지 대만으로 가던 길에 한국에 약 2주 가량 머물렀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고교 동창에서부터 대학 동창,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근무했던 신문사의 선후배 기자들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필자가 스포츠, 그것도 축구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관계로 대화는 자주 축구로 샜다. 요즘 한국 축구가 어떻다느니, 박주영이 정말 ‘물건’이라는 등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갔다. 그러면서 항상 빠지지 않는 질문이 “네가 살고 있는 미국에도 사람들이 축구를 많이 하니? 미국에선 축구가 거의 인기 없지?”라는 것이었다.
막상 질문을 던지지만 그 뒤엔 선입견이 짙게 깔려있었다. 미국에선 축구 인기가 거의 없을뿐더러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도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 직접 물어보는 당사자나 호기심 섞인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도 대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듯 했다.
“야들아, 미국인 갸들은 야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같은 것이나 하지 축구 하는 것 봤냐? 갸들은 축구를 모른다니까, 몰라!!!” 옆에서 한 친구가 이렇게 라도 툭 치고 나오면 나머지 사람들도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상황은 다른 그룹의 친구, 혹은 선후배를 만날 때도 비슷하게 전개됐다. 적어도 이들에겐 미국=축구란 공식이 전혀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은 듯 싶었다.
어찌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미국의 스포츠 하면 먼저 메이저리그 야구와 NBA가 떠오를 것이고 그 뒤로 미식축구나 아이스하키도 생각날 테지만 축구가 연상되기엔 좀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메이저리그나 NBA 같은 경우 한국 선수들이 뛰고 있을뿐더러 국내에도 곧잘 중계가 돼 익숙하지만 미국 축구가 국내 방송에서 소개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출신의 축구 슈퍼스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 국제대회에서 미국 국가대표팀이 잘 할 때면 “저건 엘리트 팀이라 그럴 꺼야” 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미국 축구가 얼마나 저변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그 인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져 가는 지를 가늠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해 요즘 미국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축구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있으며 더불어 이런 열기에 힘입어 축구가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축구를 즐기는 인기가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동네 공원엔 휴일이면 조기축구를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어른들뿐만 아니다. 축구를 즐기는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의 숫자도 갈수록 증가 추세이다. 어린이들은 이제 야구나 농구대신 축구를 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요즘 미국 학교에선 미식축구구장, 야구구장이 이젠 축구장으로 함께 활용되고 있다. 1070년대만 해도 불과 10만 명에 불과했던 전미 유·소년축구리그 회원은 90년대 300만 명을 넘어선데 이어 오늘날엔 무려 4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던 유·소년 Little 야구 리그의 인기를 눌렀다.
이처럼 유·소년축구 인구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 축구를 즐기는 인구는 약 2,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즉, 한국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축구를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처음엔 뉴욕 보스턴 LA 등 대도시가 집중된 지역에서만 축구가 인기 있었지만 이제 축구 열기는 중부의 작은 시골마을 등 전역에 퍼져 미국 어디를 가나 축구를 즐기는 미국인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야구 농구 미식축구 같은 종목에 비하면 축구는 아직 마이너 종목이다. 또 프로리그도 MLS(메이저리그사커)가 있지만 그 규모 면에서는 MLB(메이저리그야구), NBA(미국프로농구리그) NFL(미국 프로풋볼리그)에 비한다면 현저히 작다. 그렇지만, 소리 소문없이 축구 인기가 폭발하고 있고 해마다 축구를 즐기는 인구는 고속 성장을 거듭, 머지않아 야구 농구 미식축구의 인기를 따라잡을 다크호스로 평가받고 있다.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면 잘 믿지 않으려 한다. “미국이 축구를 해봐야 그게 그거지”한다. “아무리 잘해야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려면 50년은 걸릴 것”이라고 단언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 미국은 2002 한일월드컵 때 8강까지 올랐었다. 독일과의 8강전서 아깝게 패하긴 했지만 경기 내용은 오히려 우세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뿐만 아니라 94년 미국월드컵과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각각 16강에 진출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던 미국 축구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최근 열린 각종 청소년대회에서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2003년 세계청소년대회 때 당시 15살의 나이로 한국 수비진을 농락하며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축구신동 프레디 아두라는 걸출한 재목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스타의 출현과 각종 국제대회에서의 뛰어난 성적은 축구열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해왔다.
각급 대표팀 경기에서 여러 차례 한국과 맞붙은 미국. 힘과 스피드가 뛰어난 특징을 보인다. 여자축구는 어떤가. 미국 여자축구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으로 여자월드컵,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도맡아 따오고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미국 여자대표팀은 ‘전설적인 영웅’인 미아 햄을 앞세워 또 우승을 거머쥐었었다. 이 모든 게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게 그만큼 저변이 넓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 축구열기의 독특한 현상중의 하나는 축구를 즐기는 여자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축구 하면 으레 남성 스포츠로 인식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그 정반대다. 여자 축구가 오히려 더 활성화돼 있으며 어린 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공원에서 축구를 즐기는 모습은 이제 아주 당연하고, 어떤 때는 그 숫자가 오히려 남자아이들보다 더 많다. 또 중·고등학교엔 거의 빠짐없이 여자축구팀이 있다.
이런 축구열풍에 힘입어 축구 캠프도 인기가 높아 해마다 방학 시즌이면 축구 캠프는 성황을 이룬다. 인기 있는 축구 캠프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참가도 못할 정도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의 축구 실력은 어떨까. 물론 한마디로 꼬집어 말하기 힘든다. 단지 축구가 좋아 시작하는 사람에서부터 프로선수출신까지 그 선수 층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인들의 축구 실력은 꽤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힘이 좋다. 축구 기술이 없더라고 힘이 좋기 때문에 줄기차게 뛰어다닐 수 있어 부족한 기술을 커버한다.
필자는 2년 전 이곳 오레곤주 포틀랜드시에 오면서부터 이곳 포틀랜드 아마추어축구리그에서 뛰어왔다. 처음엔 “미국인들이 축구를 해야 얼마나 잘 하겠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좀 축구 좀 한다고 소리를 들었는데….” 하는 자만심과 함께.
그러나 웬걸. 막상 필드에서 부딪혀보니 달랐다. 기술은 부족한데 힘으로 밀어 부쳤다. 태클도 과격하게 들어오고 몸싸움도 심했다. 스피드도 좋아 기술로 한 명을 제쳤다 싶으면 어느새 금방 따라붙는다. 과격하게 축구 경기를 하는 탓에 가끔씩 다리가 부러지거나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등 다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한번은 미국 친구들과 실내축구 팀을 이뤄 일본 학생들로 구성된 팀과 경기를 한 적이 있었다. 경기 전에 살펴보니까 일본 학생들의 공 다루는 솜씨가 필자가 속한 팀의 선수들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미국 친구들은 부족한 기술을 힘과 스피드로 밀어 부쳤다. 일본 학생들은 몸싸움에서 나가떨어지기 일쑤였고 미국 축구들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몰아쳤다. 결과는 5-1 완승.
축구가 기술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하드웨어가 잘 갖춰진 미국인들이 앞으로 축구를 본격적으로 하면 참 잘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미국축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미국내의 히스패닉의 인구증가이다. 히스패닉이란 멕시코,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아메리카 출신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인데 중남미 아메리카 나라들은 잘 알려지다시피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나라들이 아닌가.
특히,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 인구의 최근 급격한 유입은 미국의 축구 열기 전파에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즉, 축구가 종교이다 시피한 멕시코(인)들은 미국에 와서도 여전히 축구를 생활 속에서 즐기며 축구를 미국인들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 MLS 등 축구경기가 벌어질 때면 벌떼처럼 경기장을 찾아 프로축구 붐에 큰 일조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MLS팀에서는 구단 직원을 뽑을 때 반드시 영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할 줄 아는 사람을 뽑는다. 미국축구에서 히스패닉이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아직까지 미국에서 축구가 주류 스포츠문화라고 할 수 없다.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 이미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기존 스포츠를 단숨에 따라가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축구는 단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이미 축구를 즐기는 인구는 미 전역에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젠 생활 속에서 축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더 이상 축구는 미국인들과 전혀 동떨어진 스포츠가 아닌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인들은 축구를 싫어하지도 못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잠재력이 있고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머잖아 미국축구가 세계 정상에 군림할 날도 머지 않았다고 한다면 필자의 지나친 과장일까.
미국축구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②
■ 미국에서 축구는 고급 스포츠
미국에서 축구는 고급 스포츠다. 돈 없고 가난한 사람은 못하고(안하고) 주로 돈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고급 스포츠가 바로 축구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겠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아니 달랑 공 하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축구인데 무슨 이 축구가 돈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만이 즐기는 고급 스포츠라니..." 하지만 적어도 미국에선 그렇다.
미국에서 축구는 주로 돈 많고 여유 있는 백인 중산층이 하는 스포츠다. 축구를 즐기는 흑인들은 찾기 쉽지 않다.
16살의 흑인 축구신동이라는 프레디 아두(DC 유나이티드)도 사실 미국 토종이 아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건너온 이민자다. 2004~2005 시즌 박지성-이영표와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함께 뛴 미국대표 비즐리도 흑인이지만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과 경기를 했던 미국대표팀 선수들의 면면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백인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보통 운동이라면 흑인들이 잘 하는데, 실제 NBA나 NFL(미국프로풋볼리그) 등을 보면 흑인 선수들이 거의 주름을 잡고 있는데 왜 축구엔 흑인선수들이 없는 것일까. 유일하게 백인들이 기를 펴고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포츠 종목인 축구, 그것은 축구가 '고급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축구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야구같이 많은 장비를 사야하는 것도 아닌데 왜 돈이 많이 드느냐고 하겠다. 이유인즉슨, 축구장은 농구 코트처럼 아무 곳에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경기장을 가려면 반드시 차를 타고 가야하고, 또 축구 프로그램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에 참가하려면 손수 찾아다녀야 할 뿐더러 유니폼, 축구화도 사야하고 꼬박꼬박 참가비도 내야한다.
즉, 어릴 적에 축구를 즐기려면 반드시 부모가 차로 경기장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등 어느 정도 도와줘야 가능하다. 이러니 미국에선 좀 집안이 여유 있는 학생들만이 축구를 즐길 수 있고, 차도 없고 부모 뒷바라지도 기대할 수 없는 아이들은 축구를 즐길 수도 없다.
그런데 미국에선 누가 잘 살고, 누가 못 사는가. 그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백인들이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중·상류층을 이루고 대다수 흑인들은 여전히 사회 밑바닥의 빈곤층을 이룬다. 이러다 보니 고급 스포츠인 축구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백인 자녀들이고 흑인 자녀들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더 큰 이유는 사실 흑인들이 축구를 기피한다. 왜냐하면 축구를 평생의 업(業)으로 생각하고 달려 들어봤자 별다른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축구선수로 대성한다고 해도 연봉은 다른 종목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에 재능 있는 흑인 선수들이 축구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성공하면 명예와 부가 보장되는 농구나 미식축구, 혹은 야구를 하려한다. 장래 마이클 조던을 꿈꾸며 말이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들은 자식이 프로농구선수나 프로미식축구선수가 돼서 가족을 먹여 살리길 바라며 자기 자식만큼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자기 자식들이 '한가롭게' 축구나 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고 대신 '돈이 되는' 농구나 미식축구를 하길 원한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미국에서 2005년 현재 축구선수로서 최고액 연봉자는 LA 갤럭시의 랜던 도노반인데 그의 연봉은 90만달러(약 9억원)이다. 그 다음이 FC 댈러스의 에디 존슨으로 87만5,000달러(약 8억7,500만원)이고, 파격적인 대우로 화제가 됐던 프레디 아두도 연봉은 55만 달러(약 5억5,000만원)으로 전체 MLS(미국프로축구리그) 연봉 랭킹 3위(권)이다.
물론 이 정도 대우는 다른 프로스포츠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NBA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NBA의 톱스타의 경우는 일년 연봉은 무려 300억원을 넘는다. 샤킬 오닐, 케빈 가넷, 코비 브라이언트 등 NBA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연봉은 300억원은 기본이고, 톱 30위안에만 들어도 연봉 100억원 돌파는 우습다.
2004년 말 한국선수로 최초로 NBA 입성에 성공한 하승진(포틀랜드)의 연봉은 당시 NBA 최저수준이라고 했는데 그 규모는 약 5억원이었다. 즉, NBA 최저 연봉 수준이 MLS에선 최고 수준의 연봉이란 얘기다. NBA 평균연봉은 약 492만 달러(약 49억원). 또 2005년 초 조사된 NFL의 경우만 해도 평균 연봉은 약 125만 달러(약 12억5,000만원)으로 축구선수 최고몸값을 간단히 넘어서고 있다.
물론 미식축구에서도 스타급 선수는 연봉규모가 100억원이 훌쩍 넘는다. 인디애나 폴리스의 쿼터백인 피튼 매닝의 경우 2004~2005 시즌 연봉은 무려 1,780만 달러(약 178억원)이다. 야구로 성공해도 엄청난 대박이 기다린다. 2004년 미국 스포츠스타 가운데 샤킬 오닐(마이애미)에 이어 연봉 2위를 기록했던 매니 라미레스(보스턴 레드삭스)의 연봉은 무려 2,250만 달러(225억원)이었다.
이러니 어느 재능 있고 가난한 유망주들이 한가하게 축구나 즐기고 있을까. 대신 절박한 이들은 '대박'을 찾아 농구나 미식축구, 혹은 야구를 대신 택하게 된다. 게다가 농구, 야구, 미식축구 등을 하면 갈만한 대학이 많은데 비해 축구를 할 경우 받아주는 대학이 많지 않다는 것도 많은 재능 있는 유망주들이 선뜻 축구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미국에선 대학농구나 대학풋볼, 대학야구의 인기가 높아 각 대학에서는 이들 종목에 우수한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해 전액 장학금 등 각종 혜택을 많이 준다. 하지만 축구를 전공했을 경우엔 갈 만한 대학도 많지 않고 오라는 곳도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스포츠에 재능 있는 운동선수가 왜 축구를 택하는 '모험'을 택하겠느냐는 것이다.
필자가 다닌 포틀랜드 주립대학에도 몇개 스포츠 팀이 있었는데 미식축구, 농구팀은 거의 흑인들의 독차지였고 여자축구팀은 거의 100% 백인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러다 보니 자연 미국에서 축구는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취미 삼아 즐기는 그들만의 '고급 스포츠'로 자리 매김 해왔던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축구(MLS)를 즐기는 주요 관객들도 대개 중산층 이상의 여유 있는 사람들이거나 외국에서 건너온 라틴계 등 이민자들이다.
통계에 따르면 MLS 관람자의 약 30%는 가족의 연간 수입이 15만 달러(약 1억 5,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MLS가 아직 다른 프로스포츠에 비해 여전히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96년 출범이후 큰 위기 없이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은 이처럼 그 주요 고객들이 중산층 이상이 많다보니 실제 물건 구매능력이 높은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기업 스폰서들이 꾸준히 붙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축구가 고급스포츠라는 것은 사커맘이란 단어의 유래에서 잘 알 수 있다. 사커맘(soccer mom)이란 말 그대로 축구하는 자녀의 엄마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처음 나온 것은 90년대 초반으로 콜로라도 덴버의 시의회 선거에 나선 한 여성이 자신을 사커맘이라고 소개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이 사커맘이란 단어는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고 이젠 누구다 다 아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왜 사커맘이냐? 미국에선 농구 야구 미식축구가 더 인기 있고 아무래도 이런 운동을 하는 자식들을 따라다니는 부모들이 더 많을 텐데, 그러면 베이스볼맘, 배스킷볼맘, 풋볼맘이 더 유행해야 될 텐데 왜 사커와 연관된 사커맘이 유행했을까?
그것은 이 사커맘이 독특한 계층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커맘이라고 하면 '학교에 자녀를 둔 여성으로서, 대학 교육을 받은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주로 도시 외곽에서 여유 있게 사는 백인 여성'을 의미한다.
즉, 슬럼가가 밀집한 다운타운이 아닌 시 외곽에서 여유 있게 살면서 자녀를 축구하는 곳까지 태워다주고 태워올 수 있는, 그런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가진 여성들을 말한다. 여기에서 사커맘의 '자제'들이 즐기는 스포츠는 다름 아닌 축구다. 축구는 중상류층의 자제들이 즐기는 고급스포츠이고, 그런 중상류층의 엄마들이 사커맘으로 불리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사커맘이란 단어엔 고급, 중·상류층이란 의미가 내포돼있는 것으로 우리가 일반적인 기준으로 생각하는 '축구선수를 둔 극성스런 학부모'란 이미지의 사커맘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필자가 뛰고있는 포틀랜드 아마추어 축구리그에서도 흑인들은 좀체 보기가 힘들다.
이곳 포틀랜드로 유학을 온 뒤 2년여간 아마추어리그에서 뛰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봐왔지만 흑인들을 본 것은 정말 손을 꼽을 정도다. 간혹 흑인들끼리 한 팀을 만들어 나오기도 하지만, 전체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비율이다. 실내 축구장을 가도 흑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백인들이 많다.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대부분 어릴 적부터 취미 삼아 축구를 했고, 자기 아이들이 축구 캠프에 들어가면서 자신도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다.
지난달 하루는 축구 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미국인 친구와 약속이 있어 집 근처의 레크레이션 센터에 갔다. 그 곳엔 정규 규격의 축구장이 5개가 있었는데 마침 휴일이라 구장은 모두 축구를 하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연령별로 대회가 있는 듯 초등학생부터 중고교생까지 다양한 '축구선수'들이 기량을 겨루고 있었다. 선수들의 면면을 지켜봤는데 역시나 흑인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간혹 한 두 명의 흑인 선수들이 있는 팀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백인 학생들이었다. 특히 여자 축구팀에선 단 한 명의 흑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축구장 근처엔 실내 농구장이 있었는데 누가 농구를 하나 창문으로 들여다봤다. 농구 코트는 온통 흑인들의 독차지였다. 간혹 백인들도 눈에 띄었지만 거의 흑인 선수들이 농구 코트를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같은 것들은 미국의 일상 속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일반 서민 스포츠가 미국으로 건너와 '고급 스포츠'로 바뀌어버린 축구. 미국만의 독특한 축구문화가 아닐 수 없다.
미국축구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③
■ 미국축구가 발전하지 못했던 역사적 배경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예상 TV 시청자수는 전 세계적으로 연 400억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계 인구가 60억 여명임을 감안하면 말이 400억 명이지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유럽-아시아-남미-오세아니아-아프리카 등 전 세계는 월드컵이 열리는 4년마다 축구의 광풍에 휩싸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축구는 만국 공통어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몰라도 축구 슈퍼스타인 데이비드 베컴이나 지네딘 지단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정도다. 이제 축구는 세계적인 대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대세에 역행하며 독자적인 스포츠의 세계를 구축해 온 나라가 있으니 바로 미국이다. 전 세계가 축구에 열광할 때 유독 미국만은 축구를 무시한 채 그들만의 스포츠인 야구, 미식축구, 농구 등에 더 열중해왔다. 왜 그랬을까. 왜 미국인들은 축구를 싫어했을까. 저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스포츠에 왜 유독 미국 사람들만 무관심했을까.
미국인은 특별한 종족인가. 성격이 달라서? 자란 환경이 달라서? 또 만약 미국이 오래 전부터 축구에 열광해 NBA나 메이저리그야구와 같은 세계최고 수준의 축구 리그를 갖고 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 같은 슈퍼 스타가 이끄는 농구 드림팀이 우습게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듯 미국의 축구 드림팀도 월드컵 우승의 단골손님이 되었을까.
세계에서 스포츠에 돈을 가장 많이 쓰고, 또 스포츠 비즈니스가 가장 발달된 미국에서 유독 축구만 이렇게 찬밥 신세가 됐는지 역사를 되돌려 추적해 그 원인과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에서 근대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때는 1800년대 중반이다.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이민(자)들로 이뤄진 나라인데 초창기 미국인들이 즐긴 스포츠도 대부분 이민(자)들이 가져온 스포츠였다. 물론 이 가운데엔 영국에서 건너온 축구도 포함돼있었다. 미국으로 건너온 스포츠는 많은 변형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자존심이 상한 듯 이것저것 뜯어고쳐 자기들의 구미에 맞게 스포츠를 변형 시켰다. 영국에서 건너온 크리켓은 야구로 바뀌었고, 럭비는 미식축구로 바꿔놓았다. 초창기 스포츠는 오늘날의 리그처럼 조직적이지 못했다.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한 것은 사회가 농업시대에서 공업시대로 바뀌면서 비롯됐다.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리기 시작하면서 도시가 커지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무료한 도시인들이 주말에 볼거리를 찾게 되면서 엔터테인먼트의 하나로 스포츠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많은 스포츠 가운데 미국인들은 야구에 애착을 많이 가졌다.
당시 미국은 전반적으로 영국에 대한 감정이 여전히 좋지 않은 때였다. 독립전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지만 미국인들은 미국인들 나름대로 영국보다 더 나은 국가라는 자존심이 더 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먼저 발전시키고 전 세계 각지에 퍼트리고 있는 축구를 받아들이기엔 영 내켜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이 고유하게 만들고 발전시켜온 야구에 더 큰 애정을 보였다. 자연 스포츠에 대해 관심 있는 재력가들도 야구에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 논리는 간단하다. 인기 높은 야구에 투자해야 그만큼 돈을 벌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괜히 일반인들 사이엔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축구에 투자해봤자 돈을 날릴 것이 뻔한데 누가 축구에 투자를 하느냐 말이다.
미국에서 야구가 처음 도입된 때는 1850년경. 초기엔 중·상류층의 레저 스포츠였는데 곧 스포츠를 즐기는 계층이 중·하류층으로 바뀔 정도로 미국 내에 야구의 저변은 급속도로 확대됐다. 차츰 야구를 즐기는 계층이 늘어나면서 급기야 1876년 메이저리그야구가 탄생하기에 이르게 된다.
메이저리그는 철저히 스포츠 상업화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 리그 야구는 자본가들에게 스포츠를 이용한 하나의 돈벌이 사업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반면 같은 시대 영국과 유럽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축구는 미국의 야구와 달리 꼭 돈을 벌 목적으로 사업가들에 의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선교사나, 유학생, 외국으로 진출한 비즈니스맨들을 중심으로 축구란 새롭고 흥미로운 스포츠를 각지에 전파시키려는 자발적인 노력들이 축구 발전의 큰 밑거름이 됐다.
미국에서는 야구와 함께 럭비를 변형시킨 미식축구와 농구 또한 높은 인기를 끌었다. 미식축구는 그 특유의 격렬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끌었고 농구 또한 새로운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 이들 종목들의 특징은 모두 전형적인 미국 스포츠라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직접 고안하고 변형시켜 탄생시킨 미국 스포츠인 것이다.
이렇게 미국적인 스포츠에 미국인들이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예전의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는 영국에서 만든 축구를 선뜻 주류 스포츠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어려웠다. 사실 미국에서 야구가 발전한 것도 영국이 만들고 영국 스포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켓에 맞서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국인들이 발전시킨 부분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종주국인 축구의 입지는 초창기 미국에서 더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초창기엔 축구가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꽤 인기가 있었다. 180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모여 협회도 만들고 리그도 만드는 등 축구보급에 힘을 썼다. 1884년 미국축구협회가 마침내 창립돼 각종 규칙들이 만들어졌고 1895년엔 일부 동부지역의 팀을 중심으로 내셔널축구리그가 창설되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 농구 미식축구에 치이는 것은 물론이고 복싱, 폴로 등의 스포츠도 덩달아 큰 인기를 얻어가면서 축구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실패하고 1898년 내셔널리그는 막을 내렸다. 1900년대 초반은 현대스포츠가 기반을 닦는 중요한 시기인데 이처럼 다른 종목들이 먼저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도 축구가 미국에서 발달하지 못한 큰 원인중의 하나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 있는 사람들이 벌써 다른 스포츠에 투자를 많이 하다보니 잠재력은 있지만 당장 인기스포츠가 아닌 축구에까지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 돈버는 게 목적인 투자자들로선 구태여 모험을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즉, 야구 농구 미식축구 복싱 등 돈 잘 벌리는 스포츠도 많은데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많이 못 끄는 축구에 투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특히 격렬한 스포츠로서 축구와 미식축구간의 경쟁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훨씬 더 폭력적이고 남성다움을 강조하는 미식축구의 손을 들어줘 축구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었다. 전반적인 미국 사회의 분위기도 축구 발전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민(자)들은 그네들 나름대로 새로운 사회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미국적인 스포츠,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좋아하려고 애쓰다 보니 유럽에서 즐겨했던 축구는 점차 멀리하게 됐다.
또 당시 사회 분위기는 내셔널리즘과 애국주의가 높았을 때였기 때문에 유럽에서 건너온 축구에 대해 못마땅한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하루라도 빨리 새 환경에 적응하려는 이민(자)들이 드러내놓고 수입 스포츠인 축구를 좋아하기는 한계가 있었다.
축구를 관장하는 조직의 부재와 무능도 미국축구가 초창기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된 원인중의 하나다. 1884년 드디어 미국축구협회가 창립됐지만 내부적으로 권력을 놓고 많은 분쟁이 일어났다. 1912년엔 미국 아마추어축구리그(AAFA)와 아마추어축구리그(AFA)가 동시에 만들어져 축구를 전국적인 스포츠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양 기구가 협력해도 모자라는 판에 서로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미국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여 축구의 퇴보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이렇듯 제대로 된 축구 기관도 없고 축구 행정이 없다 보니 자연 체계적인 축구의 발전은 꿈을 꿀 수도 없었다. 이런 축구 행정력의 부재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이름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한 것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초창기 축구 기관들은 항상 Football Association이란 이름을 사용했는데 문제는 이 이름에서 축구란 의미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미국에서 Football은 미식축구를 의미하지 우리가 알고 있는 축구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미식축구와 축구를 구분하기 위해 Football과 Soccer를 나눠 쓴다. 그런데 미국의 초창기 축구 기관들의 고집스럽게 Football을 고집, 일반인들을 헛갈리게 했다. 1945년이 돼서야 US Soccer Football Association을 사용, 처음으로 soccer(축구)란 이름을 넣었고 1974년 미국축구협회를 United States Soccer Federation으로 명명, 드디어 Football이란 이름을 지웠다.
초창기 대학에서 축구를 외면한 것도 미국에서 축구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중의 하나이다. 당시 미국은 유럽과 달리 많은 학생들의 입학을 허용해 대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사회의 엘리트계층으로서 스포츠 문화의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
특히 대학스포츠는 거의 세미 프로수준으로 이미 전국적으로 많은 팬을 갖고 있을 만큼 스포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그런데 이렇게 스포츠 문화의 리더 역할을 하는 대학에서 축구를 외면했으니 축구가 제대로 클 리가 없다.
사실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대학에서 축구의 인기는 엄청났다. 예일, 프린스턴, 콜롬비아 등 명문대학팀들 사이엔 축구경기를 통해 서로 우의를 쌓을 정도로 축구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1876년부터 대학생들이 하나둘씩 축구보다 미식축구를 더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대학에서 축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됐고 대신 미식축구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대학팀들간의 스포츠 교류는 축구대신 미식축구를 통해 이뤄졌고 대학별 미식축구리그는 폭발적인 인기를 더해갔다. 실제로 그 이전까지 활발했던 대학간의 축구교류는 1877년부터 뚝 끊겼고, 이후 1902년까지 공식적인 대학팀들간의 축구 경기는 단 한 건의 기록도 없을 만큼 대학에서 축구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축구의 큰 매력중의 하나가 국제 경기, 특히 라이벌 국가와의 경기인데 초창기 미국에선 국제 경기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축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하기도 했다. 미국은 간간이 영국팀을 초청해 국제경기를 벌이곤 했지만 그 횟수는 현저히 작아 축구 부흥을 도모하는 데 실패했다.
또 세계 제일이라는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미국인들은 자국의 스포츠기구가 다른 국제 상위 기관(국제축구연맹)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도 축구를 영 내켜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즉, 유럽인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FIFA에 의해 자국리그가 간섭받고 또 FIFA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축구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
당시 미국은 나라 자체가 클 뿐더러 경제 규모도 유럽 전체와 맞먹을 정도로 커질 대로 커져서 다른 나라와 교류하지 않아도 자급자족이 충분한 상황이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이 커서 국내리그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이 나 자생이 가능하다 보니 구태여 인터내셔널 매치 등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다른 나라들이 국가간에 벌어지는 축구 경기를 통해, 월드컵 등 세계적인 축구대회를 통해 축구의 묘미에 한껏 빠져드는 사이 미국인들은 국내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스포츠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미국이 발달시켜온 스포츠인 야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을 보면 축구처럼 국제적인 스포츠라기보다는 미국과 일부 국가에서만 국지적으로 발달해온 종목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비근한 예로 요즘 미국에서 야구, 농구를 제치고 미국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스포츠인 미풋볼리그(NFL)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인기가 없다. 미국 축구가 소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1970년대 북미축구리그(North American Soccer League)가 졸속 행정과 운영에 미숙함으로 실패한 것도 오늘날까지 미국에 축구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다.
TV로 중계가 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은 미국에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축구에 대한 일반인들의 높은 관심에 고무된 투자가들은 이윽고 1968년 북미축구리그를 출범시키게 된다. 하지만 TV 중계권도 확보하지 못하고 각 팀들이 재정난으로 속속 문을 닫아 리그 출범 3년 뒤엔 고작 5팀만이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했다.
■ 축구황제 펠레, 1975년 미국 뉴욕 코스모스 팀 입단
전환점이 된 것은 1975년 축구황제 펠레를 영입하면서부터이다. 뉴욕 코스모스 팀이 펠레와 사인을 한 이후 전 세계에서 몰려든 미디어는 물론 미국 미디어의 관심이 폭발했고, 또 이런 영향으로 일반인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도도 부쩍 높아졌다. 펠레에 이어 국제적인 축구 스타의 영입은 계속돼 베켄바워(서독), 게르트 뮐러(서독), 에우제비오(포르투갈), 고든 뱅크스(잉글랜드), 조지 베스트(북아일랜드) 등 당대 내노라하는 슈퍼스타들이 총 결집했다.
이런 스타선수들 덕분에 관중 수는 매년 크게 증가했는데 특히 1976년과 1977년엔 축구장을 찾는 관중이 눈덩이처럼 불어 1977년 코스모스-스트라이커 팀간의 플레이오프 경기 때는 77,691명이라는 기록적인 관중이 입장했다. 1980년에도 4만-5만 명의 관중이 입장하는 경기가 많아 미국에 축구 르네상스 시대가 활짝 열리는 듯 했다.
하지만 미숙한 운영이 문제였다. 리그는 여전히 TV 중계권을 따내지 못해 만년 적자에 시달렸고 팀들은 장기적인 계획 없이 몸값이 비싼 국제적인 스타 선수들을 너도나도 영입해 재정 압박을 자초했으며, 또 유망주를 자체 육성하고 자국 선수를 키워 장기적으로 리그를 살찌우기보다는 외국선수 스카우트에만 열중, 리그의 부실을 초래했다.
결국 펠레, 베켄바워, 에우제비오 등 슈퍼스타의 영입과 함께 축구 붐을 타던 북미축구리그는 1980년부터 재정난을 견디지 못한 팀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해 1985년을 끝으로 리그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당시 축구에 열광하며 축구를 시작했던 유·소년과 청소년들이 오늘날에는 성인이 돼 오늘날 미국 축구 팬의 주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때부터 유·소년축구가 활성화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측면이 아닐 수 없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축구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 미국인들은 유·소년들을 중심으로 직접 하는 스포츠로서 자리를 조금씩 잡아갔다. 특히 미국여자축구의 비약적인 발전은 미국축구 부흥의 큰 밑거름이 돼왔다.
그러나 여전히 축구는 미국 스포츠의 주류에 끼지 못한 채 변방에 머물고 있다. 오랫동안 다른 스포츠에 길들여진 미국인들의 입맛을 축구란 새로운 종목에 맞추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에 길들여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아직도 축구에 대해 '득점이 많지 않다, 지나치게 수비 위주다, 무승부가 너무 많다(전체 경기의 3분의 1이 무승부), 중간에 휴식 시간이 너무 없다'는 등 불평을 쏟아 붓는다.
이 모든 것이 그동안 100여년 이상 미국식 스포츠, 미국식 스포츠 패턴에 익숙해져 유럽식으로 발달된 축구란 스포츠에 대해 낯설어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입맛을 한꺼번에 바꾸기란 힘든 법. 밥과 김치만 먹던 한국 사람이 하루아침에 서양식으로 고기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포츠 문화도 마찬가지. 이미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스포츠에 대한 입맛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요즘 들어 미국에서 서서히 축구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지만 전체적인 규모를 놓고 봤을 때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축구가 야구, 농구, 미식축구 못지않게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으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할 수 있다. 또 10년-20년 뒤에 축구가 미국에 뿌리를 내리리라는 법도 없다. 왜냐하면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 다른 종목들도 살아남기 위해 치고 올라오는 축구와 더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 축구의 한계이기도 하다.
미국 축구의 오해와 진실 ④
■ 미국 여자축구가 강한 진짜 이유
미국 여자축구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 월드컵을 두차례(91년, 99년) 석권했고, 지난 12년간 벌어진 3차례의 올림픽에서도 모두 결승까지 올라 금메달 2개(96년, 2004년), 은메달 1개(2000년)를 따냈으니 가히 '여자축구의 브라질'이라고 할 만 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미국에선 축구가 야구,농구,미식축구 등 다른 스포츠에 비해 인기가 없다는데 어떻게 미국 여자축구가 이렇게 세계 최고 수준의 팀이 되었을까. 우연일까. 미아 햄 같은 슈퍼스타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운좋게 최강 전력을 유지했던 것일까.
미스터리는 더 있다. 미국 여자축구는 불과 30년전인 1970년대 이전까지 체계도 없고 이렇다할 조직도 없었다. 즉, 미국 여자축구의 역사라고 해봐야 고작 3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멀게는 1930년대부터 여자축구팀을 만들고 리그를 운영했던 것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1985년 이전엔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 조차 없었다는 사실이다. 팀, 리그, 심지어 대표팀의 역사까지 이렇게 일천한 팀이 어떻게 짧은 시간에 세계 최고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미국 여자들의 성격이 강해서? 아니면 축구를 가르치는데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미국 여자축구가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그 비법을 공개한다.
■ 여자축구의 시초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근대 축구는 태동때부터 남성 스포츠로 인식됐다. 19세기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비공식 마을 대항전에 여자들이 축구를 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긴 하지만 이것은 전문적이기보다는 단지 일회용 이벤트성이거나 축제의 여러 프로그램중 한가지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도 영국, 프랑스, 캐나다 그리고 중앙 유럽에서 일부 여자들이 축구를 즐기긴 했지만 특별히 리그나 팀간 대항전 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체계가 갖추어진 여자축구팀이 탄생한 것은 1차세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이다. 당시 영국 프레스톤(Preston)에 위치한 딕(Dick), 커(Kerr) 공장의 여자 근로자들이 점심 혹은 휴식시간에 함께 모여 축구를 즐기면서, 또 가끔 재미삼아 남자팀과 축구경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자축구팀이 결성됐다.
이렇게 창설된 딕,커 레이디 여자축구팀은 일반인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축구가 이렇게 여자들에 의해 플레이된다는 특이함 때문이었을까, 당시 웬만한 여자축구 경기엔 수많은 관중들이 몰렸다.
실제로 1920년 리버풀에서 벌어진 딕,커 레이디팀과 세인트 헬렌스 레이디팀간의 경기엔 무려 53,000명의 관중이 입장하는 대만원사례를 이뤘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때 창설된 딕,커 여자축구팀은 이후 50년간 팀 해체 없이 계속 활동했다는 점이다. (딕, 커 레이디클럽은 1970년 해체될때까지 통산 758승46무24패를 기록했는데 1922년 미국투어때는 미국에 마땅한 여자축구팀이 없어 대신 남자팀과 맞붙어 3승2무2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딕,커는 공교롭게도 1970년 영국축구협회가 여자축구 금지를 해제하던 해에 해체되고 말았다)
이렇게 여자축구가 일반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얻게되자 정작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이 같은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이 남자축구의 인기를 위협할까 고민을 했고 급기야 이듬해인 1921년 여자축구를 금지하기에 이르게 된다.
당시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영국의 모든 경기장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여자축구리그를 어떤 경기장에서도 치르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여자축구를 금지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한창 인기를 얻어가던 여자축구는 더 이상 경기장을 쓸 수 없게 돼 결국 팀들은 해체되고 경기도 못하게 됐고 자연 일반인들도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게 됐다.
지극히 보수적인 영국이 이처럼 여자축구를 의도적으로 고사시킨 것과 달리 다른 유럽 나라에서는 여자축구가 조금씩 그 생명력을 갖춰나갔다.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1930년대 초반 일찌감치 여자축구리그가 결성됐고 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즈음엔 북유럽국가들, 즉,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을 중심으로 여자축구가 활발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남미 등 다른 대륙에서도 여자들이 자체 축구리그를 결성하며 여자축구의 토대를 쌓아갔는데 이 당시 세계적으로 여자축구리그가 존속했던 나라들은 35개국에 이른다.
이처럼 유럽과 멕시코 등 중남미 지방에서 여자축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때 미국에선 그다지 여자축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1951년 처음으로 여자축구리그가 생기긴 했지만 2년을 버티지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다. 결국 지금부터 50여년전인 이 당시까지만 놓고 보면 미국은 유럽 나라들에 비해 여자축구가 한참 늦었고, 리그 수준이나 선수들의 기량도 훨씬 뒤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국여자축구가 근래에 들어와서 이렇게 유구한 여자축구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들을 제치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을까.
■ 타이틀 텐 - 미국 여자축구의 역사를 바꾼 법령
1972년 미국 연방정부는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학교에서의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타이틀 텐(Title XI)이라는 교육 수정 법령을 통과시킨다.
타이틀 텐의 골자는 아주 간단하다. 학교에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성차별을 하지 말고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조항이지만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일단 이것을 지키지 않는 학교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학교 프로그램을 진행시킬 때 이 정부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학교로서는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여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되지 그러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사실 이 타이틀 텐이 통과되기 전에는 학교에서 스포츠 프로그램을 진행할 땐 99% 가량을 남자쪽에 집중하고 여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엔 고작 1%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법령 통과로 1%도 투자하지 않았던 여자 프로그램을 50%로 끌어올려야 했던 것이다. 예산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남녀 학생의 숫자도 맞춰야 했다.
즉, 남자팀이 있으면 반드시 여자팀도 운영해야하고 남자 운동선수 10명을 뽑으면 여자 운동선수도 10명을 뽑아야 한다. 타이틀 텐 이전엔 남자 선수 20명 뽑을 때 여자 선수 1명을 스카우트할까 말까 했는데 타이틀 텐 통과이후 한순간에 상황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타이틀 텐 덕분에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여학생들의 스포츠 프로그램 참여는 큰 폭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0-71년엔 294,000명, 타이틀 텐이 통과되던 해인 1972년에 고작 317,000명의 고교 여학생만이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6년뒤인 1978년엔 그 숫자가 무려 7배가량 되는 2,083,000명으로 껑충 늘어났다. 이 숫자는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럼 이 타이틀 텐이 미국 여자 축구 발전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타이틀 텐 덕택에 각종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여학생들은 스포츠 종목 가운데 축구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압도적이었다.
농구, 소프트볼, 등도 있지만 많은 미국 여학생들은 특별히 도구가 필요하지도 않고 공 하나면 있으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축구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또 에너지가 넘치는 한창 나이에 야구나 미식축구처럼 게임 흐름이 자주 끊기는 정적인 게임보다 90분을 계속 움직이고 뛰어야하는 축구는 이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때부터 미국 여자축구의 성장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유소년, 고등학교, 대학 등 전반적으로 축구를 즐기고 여학생들의 숫자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유소년의 경우 1980년 900,000명이었던 여자 유소년 축구선수는 1985년에 1,500,000만명, 2000년엔 2,700,000명으로 증가했다. 고등학교에서도 여학생들 사이에 축구인기는 대단했다. 1976년만해도 고등학교에서 스포츠 특별활동 중 축구를 선택한 여학생의 숫자는 총 10,000명으로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80년엔 4배가량이 늘어 41,000명 (25%)이 고교에서 여자축구선수로 활동했다. 8년뒤인 1988년엔 100,000명을 돌파한 데 이어 1990년엔 비율이 35%로 또다시 껑충 뛰어 그 수치는 122,000명을 기록했다. 이 숫자는 2000년에 다시 270,000명으로 점프했고 비율도 42%로 올랐다. 이 말은 고등학교에서 10명중 4명 가량이 축구를 택했다는 얘기다.
즉, 각 고등학교들이 타이틀 텐의 영향으로 의무적으로 여자 운동부를 둬야 하는 상황에서 농구,소프트볼,축구,골프 등 여러 스포츠팀을 운영했는데 여학생들 사이에 축구 인기가 높고, 축구를 하고자 하는 여학생들이 늘어나 덩달아 여자축구팀을 새로 만들고 운영하는 학교들도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시간내에 이루어진 드라마틱한 변화는 미국 스포츠역사를 통틀어 처음있는 일. 그처럼 미국 여자축구는 폭발적인 저변 확대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참가자 덕분에 이처럼 짧은 기간안에 엄청난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던 것이다.
대학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에서 축구를 선택한 여학생들이 큰 폭으로 늘어나며 저변이 확대되자 여자축구팀을 창단하는 대학팀도 덩달아 빠르게 늘어났다. 어차피 대학에서도 여자 스포츠팀을 운영해야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기왕이면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있고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는 여자축구팀을 운영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사실 1981년만해도 미국에서 남자 대학축구팀은 521개가 있었던 반면 여자대학 축구팀은 고작 77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4년뒤인 1985년에는 여자 대학축구팀의 숫자가 201개로 껑충 뛰었고 1990년엔 다시 318개로 늘어났다.
이 기간동안 남자 대학축구팀의 숫자가 고작 48개밖에 늘지 않았다는 것을 비교하면 여자축구팀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증가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1990년대엔 한술 더 뜬다. 대학에서 여자축구는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1999년엔 드디어 여자대학축구팀 숫자(790개)가 남자대학축구팀 숫자(719개)를 앞질렀다.
이렇게 대학 여자축구팀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자연 여자 대학축구리그도 많아졌는데 워낙 많다보니 1,2,3부로 나눠서 치를 정도였다. 2001년엔 뛰어난 기량을 갖춘 팀들이 참가하는 여자 1부리그엔 총 64개 팀이 경쟁을 벌였는데 이 수치는 남자 1부리그팀 숫자(32개)의 꼭 2배였다.
미국에서 여자축구가 양적, 질적으로 얼마나 빠르게 팽창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저변이 넓고 유소년-고교-대학을 걸쳐 여자축구팀이 많아지다보니 자연 우수한 인재도 무수하게 쏟아졌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미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 미국 여자대표팀의 초고속 성장
많은 유럽국가들이 오랜 전통의 여자축구대표팀을 유지했던 것과 달리 미국 여자축구대표팀이 처음 출범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고작 20년전인 1985년이다.
처음엔 신통치 않았다. 이탈리아, 덴마크 등과의 국제경기에서는 패하기 일쑤였다. 1987년은 미국여자대표팀의 전환점이 된 해로 미국축구의 전설적인 슈퍼스타 미아 햄이 당시 15세의 나이로 대표팀에 처음 합류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각종 경기를 앞두고 급조돼 연습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고 뚜렷한 목표도 없다보니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아 대표팀 성적은 여전히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1991년 국제축구연맹(FIFA)이 제1회 여자월드컵축구대회를 개최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미국대표팀의 확실한 목표가 세워진 것이다.
새로운 목표가 정해진 미국대표팀은 중국에서 열린 제1회 여자월드컵에서 브라질 일본 대만 독일 노르웨이 등을 상대로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일약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물론 이 대회는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미국내에서 반향이 컸다. 세계 여자축구 강국이 되고자하는 새로운 목표가 정해졌고, 월드컵 우승에 고무된 많은 여학생들이 축구를 더욱 더 선호하게 되었다.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연패의 꿈을 안고 출전한 1995년 제2회 스웨덴 여자월드컵에선 준결승전에서 노르웨이에 패배,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이 패배는 오히려 좋은 자극제가 되었고 이듬해 홈에서 열린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당시 여자축구 최강으로 국제경기 21연승을 달리던 노르웨이의 연승행진을 저지하며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특히 결승전의 경우 76,000명의 관중이 들어차 여자축구에 쏠린 미국인들의 엄청난 관심을 보여줬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계를 맡은 NBC 방송사측이 시청률이 저조할 것이란 지레짐작으로 여자축구경기를 거의 중계를 하지 않아 많은 여자축구팬들의 공분을 샀다는 것이다)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로 미국여자축구의 인기는 한층 더 높아졌고 바야흐로 국제여자축구계의 신흥 파워 하우스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러한 열기에 불을 더 지핀 것은 1999년 홈에서 열린 제3회 여자월드컵대회. 미국 여자팀은 미아 햄이라는 슈퍼스타를 앞세워 덴마크 독일 브라질 등을 간단히 꺾고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에선 당시 세계여자축구의 양강을 구축하고 있던 중국에 승부차기끝에 승리, 두번째 월드컵을 거머쥐었다.
당시 미국에서 여자월드컵의 인기는 엄청났는데 매경기 평균 38,000명이 입장하는 성황을 보였고 결승전은 무려 92,000명이 운집했다. 또 결승전 TV 시청률은 94년미국월드컵의 결승전 시청률보다도 더 높을 정도였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2001년엔 여자프로리그가 출범했고 여자축구는 더욱 탄탄한 기반이 만들어졌다. (미국여자프로축구리그는 재정압박으로 2003년에 문을 닫음)
미국여자대표팀의 상승세는 계속돼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고 2003년 여자월드컵에서는 3위에 올랐다. 또 지난해 벌어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또다시 금메달을 획득, 미국여자축구대표팀의 전력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여자대표팀의 선전은 자연 축구붐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특히 야구 미식축구 등 국내 프로리그만 보아오던 팬들은 다른 나라들과 경쟁을 펼치는 국제대회에서 여자축구대표팀이 선전을 거듭하고 각종 우승컵을 갖고 오자 여자축구대표팀에 대한 자긍심도 늘어나 팬층이 더욱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국제대회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여자축구선수를 자신들의 롤(Role) 모델로 삼는 여자아이들도 크게 늘어났다. 여자축구대표팀과 선수들은 어디를 가나 여자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특히, 미국여자축구가 배출한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미아 햄은 미국아이들의 우상중의 우상이었고 여자축구붐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 미아 햄의 인기는 한국에서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데 NBA의 전설인 마이클 조던과도 맞먹는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 스포츠선수 가운데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미아 햄을 통해 미국에서 여자축구의 존재는 더욱 확실해졌고, 그를 추종하는 팬들과 선수들이 늘어나며 자연 이것은 여자축구 인기의 전국적인 확산으로 이어졌다.
■ 미국여자축구의 미래
196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여자축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면 믿겨질까. 세계적으로 여자축구가 활성화된 것이 최근의 일이기는 하지만 최근 20년-30년 사이에 보여준 미국축구의 비약적 발전은 가히 놀랍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대로 미국여자축구가 하루 아침에 강하게 된 것은 아니다. 또 일부 엘리트선수들에 의해 주도된 것도 아니다. 그만큼 팀이 많고 선수가 많다보니 우수 자원이 끊임없이 공급되고 이것은 자연 강한 대표팀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만약 1972년에 발효된 타이틀 텐 법령이 없었다면 오늘의 미국여자축구는 어땠을까. 대답은 명확하다. 만약 타이틀 텐이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여자축구는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타이틀 텐의 영향력은 간과할 수 없을만큼 위력적이었다.
학교에서의 남녀평등을 골자로 한 타이틀 텐 조항의 효력과 함께 학원에서 여자축구를 비롯한 여자 스포츠가 폭발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고 선수들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며 오늘날 미국에서 여자스포츠 중흥의 씨앗이 되었다.
실제 요즘 미국에서는 남자 못지않게 스포츠를 즐기는 여자가 엄청나게 많고 여자프로농구, 여자프로 소프트볼, 여자프로하키 등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축구는 학생들뿐 아니라 학교를 졸업한 주부 등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필자가 뛰고있는 포틀랜드 아마추어 축구리그에도 여자리그가 포함돼있고 각 연령별로 참가하는 여자팀이 꽤 많다.
이런 탄탄한 기반에서 미국여자축구는 당분간, 아니 영구적으로 세계 여자축구의 최강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 남자축구를 호령하는 브라질처럼 여자축구계에서는 미국이 적어도 향후 10년은 물론이고 30년-50년간까지도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숫자의 유소년 축구프로그램과 학원팀들, 그리고 수많은 아마추어 여자클럽팀과 다양한 아마추어 및 프로리그. 이렇게 여자축구의 인프라가 확실히 갖춰져 있는데 대표팀 성적이 안좋을래야 안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인프라나 저변은 거의 없이 일부 엘리트선수들에 기대고 있는 한국여자축구와는 양적,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가장 늦게 축구를 도입하고도 가장 성공을 거두고 있는 미국여자축구. 그 미래는 더욱 밝다고 할 수 있다.
미국축구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⑤
■ 미디어와 궁합 안 맞는 축구
미국에서 축구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TV와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TV는 유럽이나 아시아 등 다른 나라들과 달리 거의 상업방송이 주를 이루고 있다.
즉, 영국의 BBC, 한국의 KBS처럼 국민의 세금이나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아니라 오로지 광고수입에 의존해 먹고사는 상업방송이다. 물론 미국에도 공영 TV방송이 있긴 한데(PBS) 채널이 딱 1개뿐이고, 이것도 1970년대 들어 뒤늦게 생긴 것이다.
상업방송이란 무엇이냐.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다. 조금 과장하면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하고, 반대로 돈이 안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의 볼거리나 공공의 이익 등의 구호는 이들 상업방송엔 안 통한다. 오로지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바로 방송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관건이다.
스포츠 중계도 마찬가지다. 이 중계를 통해 돈이 된다 싶으면 상업방송은 언제든 흔쾌히 방송을 하고, 돈이 안 된다 싶으면 아무리 중요한 게임이라도 중계를 하지 않는다. 그럼 방송은 무엇을 먹고사는가. 바로 광고다. TV 프로그램을 내보낼 때 광고를 많이 유치하면 그만큼 많은 돈을 버는 것이고, 기껏 비싼 돈 들여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광고가 붙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이다.
또 광고의 단가는 시청률에 의해 정해진다.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은 광고효과가 크니까 광고 단가가 높고, 반대로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은 광고효과가 적으니까 그만큼 광고 단가도 낮다. 이렇기 때문에 상업 TV에서는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은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돈이 안 된다 는 이유로 폐지시키는 경우가 많다.
미국 TV방송의 또 다른 특징중의 하나가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를 끼어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나 뉴스 중간에도 광고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게 바로 미국의 상업 TV 방송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축구는 이런 상업 TV와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성격이 맞지 않아 불화를 겪는 통에 더딘 성장을 해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야구나 미식축구, 농구 같은 종목들이 상업TV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승승장구를 거듭해왔지만 축구는 상업 TV의 외면 속에 좀체 도약의 기회를 잡지 못해온 것이다.
'그깟 TV 하나가 스포츠 발전에 영향을 끼쳐봐야 얼마나 끼쳤겠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오늘날 미국스포츠에서 TV가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은 엄청나다. 한마디로 미국 스포츠에서 TV는 왕이다. TV와 궁합이 잘 맞는 스포츠는 크게 도약해왔고 반면 TV와 잘 맞지 않는 스포츠는 그만큼 쇠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 성공의 지름길…TV에 맞춰라
대표적인 케이스가 NFL(미국프로풋볼리그)과 NHL(북미하키리그)이다. 요즘 미국에선 NFL의 인기가 NBA(미국프로농구)나 MLB(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를 능가하며 하늘을 찌를 듯 한데 비해 NHL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두 리그의 TV 대처 방식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NFL은 그야말로 TV가 해달라는 모든 것을 해줬다. 일찌감치 TV에 잘 보이는 길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한 NFL은 TV 방송에 맞추기 위해 룰도, 스케줄도 자발적으로 바꾸는 등 탄력적으로 리그를 운영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TV 타임 아웃제로 이것은 특별히 TV 광고를 위해 일부러 중간에 타임 아웃을 하나 더 만든 제도이다.
또 방송사가 원하면 스케줄도 임의로 바꾸었고, 하프타임 시간도 줄여주는 등 아낌없는 배려를 해왔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TV에 맞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NFL은 그 덕분으로 TV 방송국들로 하여금 NFL 중계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NFL 팬과 시청자의 증가로 이어졌다.
1950년대만 해도 NFL은 메이저리그 야구, NBA에 뒤진 제3의 스포츠였지만, TV의 등장과 함께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성장을 거듭, 이제는 당당히 미국 제1의 프로스포츠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또 TV 중계권료도 4대 프로스포츠 가운데 최고로 높다.
반면 NHL은 TV와 궁합을 잘 맞추지 못해 그 인기를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아이스하키의 경우 게임이 생동감 있고 빠르게 진행돼 많은 흥미를 끌지만 퍽(일종의 공)이 너무 작고 빨라 시청자들이 제대로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퍽의 속도가 너무 빨라 골인이 되는 것도 순식간에 일어나고 시청자들로선 이런 중요한 장면을 놓칠 때가 많다. 그렇다고 NHL측이 TV를 위해 더 큰 퍽을 쓴다는 등 기본 룰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TV와 궁합이 잘 맞지 않다 보니 시청자들은 갈수록 외면하기 시작했고 덩달아 아이스하키의 인기도 추락의 길을 걷어왔다. 그래서 요즘엔 어떻게 하면 다시 팬을 끌어 모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NHL측은 퍽에 전자 칩을 장치, TV로 이를 시청할 때 퍽이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보이고 색깔까지 나와 퍽이 어디에 있는지를 시청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TV 중계에 맞추기 위한 또 하나의 절박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NHL은 여전히 TV 시청률 하락과 이에 따른 TV 중계권료 하락으로 재정에 어려움이 많아 기로에 서 있다.
■ 상업 TV에 맞추기 위해 몸부림치는 미국 스포츠
이밖에도 미국에서 TV에 맞추기 위해 스포츠 리그의 스케줄과 룰을 바꾼 예는 허다하다. 중계방송에 맞추기 위해서라면 일단 날씨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스포츠 사회학자인 제임스 레스톤 씨는 이에 대해 선선한 날씨에 치러야하는 프로미식축구는 시즌이 한창 더울 때인 8월에 시작한다. 또 프로야구는 따뜻한 날씨가 제격이지만 시즌은 춥고 변덕스럽게 비가 자주 내리는 봄에 시작한다.
겨울철 실내 스포츠인 프로농구는 늦은 여름에 시즌을 시작해 이듬해 5월에 끝난다. 모든 스포츠 관계자들은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날씨는 안중에도 없이) 돈에만 혈안이 돼있고 이런 가운데 막대한 돈이 떨어지는 TV 중계를 왕처럼 떠받들고 있다며 기형적인 프로 스포츠에 스케줄에 일침을 가했다.
제도 또한 TV에 맞추기 위해 마구 뜯어고친다. NBA 농구는 잘 알려지다시피 4쿼터로 진행된다. 일반 국제대회의 룰은 전후반 2쿼터로 돼있는데 NBA는 오래 전부터 4쿼터제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는 물론 쿼터 중간중간 TV로 하여금 더 많은 상업광고를 넣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다.
또 이렇게 쿼터가 많은 것뿐만이 아니라 NBA 농구를 보고 있다보면 타임아웃도 무수히 많다. 툭하면 감독이나 선수가 타임아웃을 부르는데, 이 타임아웃 시간이면 어김없이 광고가 나간다. 물론 NBA가 TV 중계시 광고 시간을 늘리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타임아웃을 많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테니스에서 타이브레이크가 생긴 것도 1970년대부터이다. 물론 상업 TV의 요구에 의해 바뀐 제도이다. 그 이전엔 TV가 테니스를 중계하다보면 언제 끝날지를 종잡을 수 없어 불평이 심했다. 그래서 미국 테니스협회 측은 타이 브레이크제도(게임 스코어 6-6 동점이 됐을 경우 먼저 7점을 따는 선수가 이기는 제도)란 제도를 도입, TV로 하여금 중계 타임을 미리 계산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다른 사례로 US 오픈 테니스대회를 들 수 있다. 호주오픈, 파리오픈, 윔블던대회와 함께 세계 4대 메이저 테니스대회로 꼽히는 US 오픈은 다른 3개의 메이저대회와 다른 독특한 경기 스케줄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준결승-결승전을 그 중간에 휴식없이 바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테니스는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 경기라 보통 준결승을 마친 뒤엔 결승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하루의 휴식을 준다. 하지만 US 오픈 테니스대회만큼은 준결승과 결승전을 휴식일 없이 잇따라 치른다. 그 이유는 바로 TV에 맞추기 위함이다.
US 오픈은 주로 CBS 방송국에서 중계를 맡았는데 보통 준결승과 결승같이 빅 매치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주로 주말에 스케줄이 잡혔다. 그런데 준결승과 결승전을 토요일, 일요일 주말 이틀에 집중 배치하게되면 당연히 시청률도 높이 올릴 수 있다는 데 착안, 대회 본부 측에 준결승-결승전을 중간에 휴식 없이 토-일요일에 연달아 배치할 것을 제안했고 이를 대회 측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왜? 대회 측으로선 CBS로부터 받는 TV 중계권료가 수입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결코 방송사의 요청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선수들이 준결승-결승을 잇따라 치러 피곤하건 말건 그건 상관할 바 아니다) 또 테니스 경기장도 점차 천연잔디구장에서 인조 잔디 구장으로 바뀌는 추세인데 이것도 다 TV에 화면이 더 잘 나오게 하기 위함이다.
1990년엔 NFL(미식축구리그)은 하프타임 시간을 15분에서 12분으로 줄였다. 또 촉진 룰을 만들어 플레이를 가급적 빨리빨리 진행시키도록 했다. 이 또한 TV를 배려하기 위해서 만든 룰이었다. 즉, 보통 NFL 게임은 휴일 낮에 벌어졌는데 이 게임이 너무 길게 늘어지면 TV 방송국으로선 저녁의 황금시간대에 다른 프로그램을 방영하는데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결국 NFL측은 TV 방송국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룰을 바꿨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얘기한대로 NFL은 TV 방송국들로 하여금 광고를 넣을 수 있도록 타임아웃을 걸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하고 있다.
■ 광고할 시간이 없다며 축구를 외면해온 미국 TV
미국에서 잘 나가는 스포츠, 즉 NFL(美프로풋볼리그), MLB(메이저리그야구) NBA(美프로농구)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게임 중간 중간에 휴식 시간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야구는 매 이닝이 끝날 때마다 휴식시간이고 농구나 미식축구도 작전시간이 무수하게 많다. 이런 휴식시간은 대개 TV 광고타임으로 활용된다. TV로선 광고를 많이 하면 할수록 돈이기 때문에 자연 광고를 아무때나 쉽게 집어넣을 수 있는 스포츠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NFL, MLB, NBA다.
그런데 축구는 어떤가. 90분 경기를 하면서 광고를 넣을 수 있는 시간이라곤 중간에 하프타임 한번밖에 없다. 이러니 광고로 먹고사는 미국 상업 TV에서 좋아할 리가 없다. 그렇다고 축구는 NFL이 했던 대로 룰을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었다.
NFL이야 미국 안에서만 하니까 자기네들끼리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할 수 있지만 축구는 글로벌 종목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다. 축구 룰은 국제축구연맹(FIFA)이라는 국제통합기구에 의해 관장되기 때문에 전·후반 90분 경기를 TV에 맞춘다고 미국에서만 25분 4쿼터제로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상업 TV는 축구를 외면해왔고 대신 광고를 아무 때나 수시로 넣을 수 있는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70년대 미국축구가 부흥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던 북미축구리그(North American Soccer League)가 결국 문을 닫게 된 것도 상업 TV의 외면이 한 몫을 했다. 1968년 출범한 북미축구리그는 첫해에는 TV가 중계를 했지만 시청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이듬해부터는 방송사들이 아예 TV 중계를 외면했다. 상업 TV는 펠레, 베켄바워 등 슈퍼스타들의 영입으로 반짝했을 때만 TV 중계를 했을 뿐 대부분은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북미축구리그의 TV 중계를 철저히 외면했다.
이렇게 TV로 중계가 되지 않으니 자연 일반 시청자들이 축구를 접할 기회는 그만큼 더 줄어들고 또 리그는 TV 중계권료를 한푼도 챙기지 못하니 재정 상황은 더 악화, 결국 일찍 문을 닫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것은 NFL, NBA 등이 엄청난 TV 중계권료를 바탕으로 리그가 고속 성장을 거듭한 것과 무척 대조되는 대목이다. 특히 NFL의 경우 리그 전체 수입의 절반이상이 TV 중계권료에서 나올 만큼 현대 스포츠에서 TV 중계권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큰데, 미국에서 축구의 경우 이처럼 TV의 외면으로 TV 중계권료를 거의 챙기지 못했으니 축구가 제대로 성장하고 뿌리내리기가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 슛 아웃 제도, 오프사이드 완화도 실패로 끝나
물론 미국축구도 TV에 맞추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전후반 45분의 기본 룰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흥미를 더 유발해 TV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지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북미축구리그 때 시행됐던 페널티 슛 아웃(shoot out) 제도와 오프사이드룰의 완화를 들 수 있다.
슛 아웃제도는 페널티킥 시 좀 더 박진감을 불어넣기 위해 기존 11m 플레이스킥 대신 하프라인부터 볼을 몰고 와 골키퍼와 1-1 상황에서 골인을 시도하는 제도이다. 특히 이 제도는 축구가 무승부가 너무 많아 재미없다는 미국 팬들을 의식, 게임이 무승부로 끝났을 때 시행해 반드시 승부를 가리도록 했다.
또 하나는 오프사이드룰의 대폭적인 완화를 들 수 있다. 이것 역시 축구는 골이 너무 나지 않아 흥미가 떨어진다는 팬들과 TV를 다분히 의식한 제도이다. 기존 FIFA의 엄격한 오프사이드룰을 대폭적으로 완화시킨 것으로 공격적인 축구를 유도, 좀 더 많은 골이 나오도록 고안된 것이다.
하지만 축구란 세계적으로 같은 룰에 의해 진행되는 게임이고 국제축구연맹에 의해 룰이 관장되는 종목. NFL, MLB, NBA처럼 좀 더 팬들의 흥미를 끌겠다고, TV에 맞춘다고 규정이나 룰을 맘대로 바꿀 수가 없다. 북미축구리그가 기존 축구 룰과 달리 대폭적으로 완화된 오프사이드룰을 사용하자 당장 FIFA로부터 경고장이 날아들었다.
1981년엔 참다 참다 못한 FIFA가 더 이상 마음대로 바꾼 오프사이드룰을 고집하면 FIFA에서 영구 제명 시키겠다며 북미축구리그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북미리그로선 만약 FIFA에서 제명될 경우 다른 나라와 친선경기도 못하고 지역 대회나 월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하는 등 각종 받게될 불이익이 너무 크다보니 할 수 없이 FIFA의 경고를 받아들여 오프사이드룰을 국제 원칙대로 환원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축구란 종목이 NFL이나 MLB처럼 국제스포츠가 아닌 미국 안에서만 발달한 스포츠였다면 맘대로 타임 아웃시간도 늘리고 오프사이드룰도 대폭 완화해 팬들의 흥미도 더 끌고 TV에 착착 맞췄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축구가 미국에서만 하는 스포츠가 아닌 다음에야 국제 표준 룰을 맞출 수밖에...
■ 미국인들의 스포츠 취향까지 바꾼 미국 상업 TV
미국인들의 스포츠 취향은 미국 상업 TV의 영향 아래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잘 살펴보면 하나의 큰 특징이 있다. 게임 중간 중간에 휴식 시간이 무척 많은 경기들이다. 메이저리그야구, 美프로풋볼, 美프로농구 등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는 한결같이 한 게임당 최소 20회 이상의 브레이크가 있다.
야구의 경우 매 이닝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있으니 최소 17번의 휴식시간이 보장돼있다. 여기에 투수교체라도 있으면 TV 광고를 할 수 있는 브레이크 타임은 더 늘어난다. NFL이나 NBA도 마찬가지다. 4쿼터로 진행되니 기본적으로 4번의 휴식시간이 보장돼있고, 작전 타임도 쿼터별로 수시로 할 수 있다. 부상자가 나와 게임이 중단되면 곧바로 방송 광고가 들어간다.
여기에다 NFL과 NBA는 TV를 위해 특별히 TV 작전타임 시간을 부여하고 있다. 즉, 양 팀이 작전 타임을 모두 쓴 뒤에도 방송국이 광고를 넣을 수 있도록 한 두 차례 더 휴식시간을 마련해준다. 게임이 이렇게 브레이크가 많다보니 상업방송으로선 게임 중간 중간에 맘놓고 광고를 끼어 넣을 수 있다. 스포츠와 상업방송의 절묘한 궁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브레이크가 많은 게임이 미국스포츠의 주류가 되다보니 미국인들도 스포츠 중계를 볼 때 중간 중간에 많은 브레이크가 있는 것을 오히려 당연히 여기게 돼왔다. 짧은 순간 순간에 펼쳐지는 절정의 플레이를 맛본 뒤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짜릿한 절정을 맛보고. 이렇게 짧은 순간 순간의 플레이를 본 뒤엔 TV가 제공하는 상업광고를 보거나,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냉장고에 가서 맥주를 가져오거나, 과자를 가져오거나 등등 브레이크 타임을 최대한 이용한다.
미국인들은 이렇게 브레이크가 많은 게임에 익숙해지다 보니 축구처럼 휴식시간이 거의 없이 진행되는 스포츠를 보는 것을 오히려 불편하게 느낀다. 축구의 경우 전·후반 45분씩 플레이를 하며 휴식시간은 중간에 하프타임 한번뿐이다. 때문에 게임 중간 중간에 브레이크가 많은 플레이를 시청하는데 익숙한 미국인들은 축구처럼 롱 테이크로 진행되는 게임에 집중을 못한다.
즉, 짧은 순간 순간에 집중해서 보는 데 익숙한 관중들로서는 긴 흐름의 게임, 프로세스(Process) 게임인 축구는 상당히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더구나 축구의 경우 특별히 절정의 순간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경기 내내 항상 집중해서 보아야 하는데 이것 또한 미국인들에겐 부담스럽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의 상업 TV가 시청자들을 브레이크가 많은 게임에 익숙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뒤집으면 미국 상업 TV는 축구란 스포츠는 브레이크가 너무 없어 중간에 광고를 넣을 시간이 없어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 NFL이나 NBA, 야구 등은 상업 TV의 요구에 맞게 룰도 스케줄도 척척 잘 바꿔주는데 유독 축구는 이미 정해진 국제 룰에 움직이다보니 탄력성도 없고, 브레이크가 많지 않아 광고 넣을 시간도 없으니 의도적으로 축구란 종목을 기피해온 것이다.
반면 유럽이나 아시아 등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축구가 TV와 궁합을 맞추며 발전해온 것은 미국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축구는 특히 국가간의 대항전을 통해 발달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사실 한국의 경우도 국가대표팀 경기가 K-리그보다 훨씬 더 인기 있지 않은가), 이런 국제대회나 국가간의 매치는 대개 상업TV가 아닌 국영 TV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즉, 돈이 안 된다 싶으면 아무리 중요한 경기이고 관심이 있는 게임이라도 중계를 외면하는 상업TV와 달리 국영TV는 국민의 관심사가 되는 게임은 모두 중계해 주다보니 자연 축구는 이들 나라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쉽게 정착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 상업 TV의 주도아래 야구, 미식축구, 농구가 발달한 반면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서는 국영 TV의 주도하에 축구가 발달해온 것이다.
그 결과 스포츠를 즐기는 취향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발달하게 됐다. 유럽, 아시아 등 미국이외에서 축구경기를 즐기는 시청자들은 오히려 브레이크가 많은 게임을 즐기는 미국인들과 달리 축구와 같이 플레이 중간에 브레이크가 없는 경기를 오히려 더 선호한다. 물론 양측 모두 상대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자세다.
90분 동안 딱 한번 브레이크가 있는 게임을 어떻게 지루해서 보냐? 게다가 득점도 별로 안 나는 그 재미없는 경기를... (미국적인 스포츠를 즐기는 미국 스포츠팬들) 미국 스포츠를 보다보면 그 수많은 광고 타임에 진저리가 난다. 어떻게 게임이 그렇게 자주 끊어지는 경기를 진정 스포츠라고 할 수 있냐? (유럽 등 미국 이외에서 축구를 즐기는 팬들)
무엇이 정답이고 누구 말이 옳을까. 분명한 사실은 미국에서 축구란 스포츠는 상업 TV의 철저한 외면 속에 좀 체 도약의 기회를 갖지 못해왔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축구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한 하나의 큰 원인인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상업 TV는 미국 내 축구 인구의 증가와 함께 큰 고민에 빠져들 것이다.
어떻게 하면 광고를 넣을 브레이크 타임이 거의 없는 축구 중계에 어떤 형태로 광고를 게임중간 중간에 끼워 넣을까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축구 인기의 증가와 함께 미국 상업 TV가 축구 중계 때 어떤 묘책을 들고 나올 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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