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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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기록
1] 32년간 세자로 있었던 임금은 순종
: 조선 마지막 왕인 순종 임금은 2세때에 세자로 책봉되어 32년간을 세자신분으로 지냈다.
2] 죽어서 왕이 된 인물은
: 조선조에는 죽은후에 왕으로 추존된 인물이 다섯명인데...
* 덕종은 세조[수양대군]의 아들로서 세조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전에 죽었다
인수대비의 남편이며 슬하에는 월산대군과 성종, 명숙공주 등 3명을 두었다.
* 원종은 선조의 5남으로 1627년에 왕으로 추존됨. 인조 등 4남을 둠.
* 진종은 영조의 아들로 사도세자와 4촌. 6세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전에 죽었다.
양자인 정조가 즉위하자 진종으로 추존.
* 장조는 유명한 사도세자로서 영조의 둘째아들이며 정조의 아버지. 부인은 홍봉한의 딸인
혜경궁 홍씨.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아버지 영조에 의해 죽음. 1899년 장조로 추존됨.
* 익종은 순조의 아들이며 헌종의 아버지.
4세에 세자로 책봉되고 19세때[순조27년]대리청정으로 참정하였으나 4년만뒤에 익종으로
추존됨.
3] 가장 많은 아들을 둔 왕은?
: 세종대왕이 18명으로 가장많고, 다음이 성종 16명, 2대정종이 15명 순이다.
딸은 태종[이방원]이 17명이며, 성종이 12명, 중종과 선조가 11명 이었다.
4] 왕비를 가장많이 배출한 가문은?
: *청주한씨가 1위
[태조비:신의왕후],[덕종비:소혜왕후],[예종비:장순왕후],[성종비:공혜왕후],[예종비:안순왕후],
[인조비:인열왕후]로 가장많고
* 파평윤씨와 여흥민씨가 4명,
* 청송심씨와 안동김씨가 3명이다.
5] 왕비중 가장 자식을 많이 낳은 왕비는?
: * 세종대왕비 소헌왕후 심씨는 8남2녀를 낳았다.
* 성종의 제9비 숙의홍씨도 7남3녀로 공동1위이다.
6] 가장 짧은기간 재위한 임금은
: 12대 인종이며 재임기간 9개월이었다. 재위기간이 짧은 순서로는 인종(9개월), 예종(1년2개월)
,정종( 2년 2개월), 문종( 2년 3개월), 단종과 순종황제( 3년 1개월)의 순서이다. 한 번 살펴보자...
①12대 인종(1515~ 1545, 31세):: 최단 재위 국왕이시다. 재위기간 9개월, 보령 31세 승하.
중종 계비 장경왕후 윤씨를 모친으로 적장남으로 태어났다. 모친은 인종을 낳으면서 산후병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운명하셨다. 1520년 세자, 1544년 11월 국왕에 즉위하셨으나 부왕 죽음에 대한
애도로 몸을 돌보지 못했고, 조선 최대 악비로 유명한 계모 문정왕후 윤씨의 끊임없는 권력욕에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 버린 비운의 국왕이다.
부인 인성왕후 박씨는 31세에 홀로되어 명종 때 왕대비, 선조 때 대왕대비가 되셨다 64세에 승하
하셨으니, 두 분 슬하에 자식은 두지 못하셨다. 그래도 인종에게 두 분의 후궁이 계셨었는데,
숙빈 윤씨와 송강 정철의 큰 누이로 혜빈 정씨가 그 주인공이다. 소생은 역시 모두 없다.
인종은 거의 자살 아닌 자살로 삶을 마감하며 모친의 ‘희릉’이 있는 고양시 원당 서삼릉 내 ‘효릉’
으로 모시었다. 생전에 나눠보지 못한 모자지정을 두 분은 지금까지도 계속 나누고 계신다.
②6대 단종(1441~ 1457, 16세):: 1452년 12세에 즉위하여 이듬해 정순왕후(定順王后) 송비와 혼인
하였다. 1455년 퇴위할 때까지 재위기간은 3년 2개월이었다.
1457년 사육신사건으로 영월로 유배가 4개월 후 살해당하니 보령 16세의 일이다.
정순왕후 송비는 14세에 혼인하여 1년, 왕비에 즉위 후 1년 반. 상왕으로 물러난 후 가슴조이는
불안한 생활 2년여 뒤 17세의 나이에 4년 반의 부부생활을 끝으로 영원한 이별을 하였다.
‘모진 것이 산목숨’이라고 송비는 노산군 부인으로 강등된 채...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시절을
거쳐 1521년(중종 16) 보령 81세에 돌아가셨다. 홀로 지낸 인고의 세월이 64년...
지금도 단종은 영월의 ‘장릉(莊陵)’에 계시고, 송비는 남양주 ‘사릉’에 각각 멀리 떨어져 지내신다.
근간에 두 분을 한 곳으로 모시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문화재 제자리 원형 보존’이란 입장에서 실행
되지 못하였고, 다만 1999년 남양주 문화원에서 ‘사릉’의 소나무를 ‘장릉’으로 가져와 심은 정령송
(精靈松)이 어린 군왕의 능 앞에 고개 숙이듯 비스듬이 서 있다.
물론 두 분 사이에 자식은 없다. 그런데, 실록에는 비록 12세에 즉위한 어린 단종이셨지만 두 분의
후궁이름이 보인다. 숙의 김씨와 숙의 권씨이다.
말이 좋아 ‘왕실의 여인’이지 이런 분들의 회한의 삶은 과연 누가 기억이나 할까??
③8대 예종(1450~ 1469, 20세):: 수양대군 즉 세조의 차남으로 친형 의경세자가 20살에 요절하자
8살에 왕세자가 되고, 1468년 19세에 국왕에 즉위하지만 재위 1년 4개월, 보령 20세에 친형과
마찬가지로 역시 20을 못 넘기고 승하하였다.
원비 장순왕후는 한명회 셋째 딸로 16세에 세자빈이 되었다가 이듬 해 말 원손 인성대군을 출산
하시고 산후병으로 17세에 돌아가신다. 세자빈의 예로 장사지내 봉일천 ‘공릉’에 모셨다.
계비 안순왕후는 새로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예종이 즉위한 1468년 21세에 국모가 되었다.
예종이 요절하니 성종 때 왕대비가 되고, 연산의 즉위로 50세에 대왕대비가 되었다.
1498년 승하하여 고양시 용두동의 서오릉 내 ‘창릉’에 계신 예종 곁으로 가셨다.
슬하에 제안대군과 현숙공주를 두셨고, 후궁으로 귀인 최씨와 상궁 기씨가 있었다.
④24대 헌종(1827~ 1849, 23세):: 순조의 손자로 효명세자와 조대비의 외아들이다.
1830년 효명세자가 요절하자 왕세손, 1834년 할배 순조가 승하하자 8세의 나이로 즉위한다.
할매의 수렴청정 후 1841년 친정을 실시하였으나 1849년 후사 없이 승하하였다. 재위 15년.
원비 효현왕후는 1841년 가례를 올렸으나 2년 뒤 16세 때 병으로 후사 없이 승하하였다.
계비 효정왕후는 1844년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5년 뒤 국왕이 23세에 사망 왕대비가 된다.
1903년 소생 없이 73세에 사망하여 헌종과 효현왕후의 ‘경릉’에 삼연릉으로 모셨다.
특히 헌종은 순화궁 경빈 김씨를 매우 사랑하여 창덕궁의 호젓한 곳에 낙선재를 지어 둘 만의
‘사랑의 보금자리’로 선물하신 멋쟁이 젊은 군주이셨다.
7]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임금은
: 21대 영조로서 51년 7개월로서 반세기동안 왕좌를 지켰다.
①21대 영조(1694~ 1772, 83세): 재위기간 51년 7개월(1724.08~ 1776.03)
②19대 숙종(1661~ 1720, 60세): 재위기간 45년 10개월(1674.08~ 1720.06)
:: 숙종과 두 아들 경종, 영조 세 분(1674.08~ 1776.03)의 통치기간 102년.
③27대 고종(1852~ 1919, 68세): 재위기간 43년 7개월(1863.12~ 1907.07)
④14대 선조(1552~ 1608, 57세): 재위기간 40년 7개월(1567.07~ 1608.02)
⑤11대 중종(1488~ 1544, 57세): 재위기간 38년 2개월(1506.09~ 1544.11)
⑥ 4대 세종(1397~ 1450, 54세): 재위기간 31년 6개월(1418.08~ 1450.02).
8] 가장 단명한 임금은 :
: 단종애사의 주인공 6대 단종 으로서 17세에 사약을받고 죽음.
9] 가장 장수한 임금은 :
: 21대 영조 로서 83세까지 장수했다.
10] 가장 많은 부인을 둔 임금은
: 3대태종 과 9대성종 으로서 12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세종대왕은 6명이었다
11] 다처왕(多妻王)과 다산왕(多産王)은 누~ 구??
①으뜸 다처, 다산왕 : 태종이다. 부인 왕비포함 12분( 좀 더 있다.)에 자식 12남 17녀이다.
(모든 기록에 숫자가 다 다르다. 헷갈릴 정도로 많다는 야그다. 생전에 처남들 몰살시키고,
여자 문제로다 원경왕후 속 많이 끓게 하신 분.)
②버금 다산왕 : 성종이다. 부인 세 분 왕비포함 11분에 자식은 16남 12녀를 두셨다.
(숙의홍씨가 일등공신으로 혼자서 7남 3녀를 생산하셨다.)
③버금 다처상 : 중종이다. 부인 세 분 왕비포함 11분에 자식은 9남 11녀를 두셨다.
(부인은 11분 계셨어도 지금은 강남 ‘정릉(靖陵)’에 홀로 계신다. 문정왕후 덕분에...)
④딸림 다처, 다산왕 : 정종이다. 부인 왕비포함 11분에 자식은 17남 8녀를 두셨다.
(“부인 말씀 잘 들어 여생이 편하였도다.” 부인 말씀 잘 들고 성공(?)해 국왕이 되신 분들 많습니다.
태종과 세조가 그러했고, 반정 때 진성대군(후 중종) 역시 그러했다.)
⑤장려상 : 세종이다. 부인 소헌왕후 포함 6분이었으나 자식은 18남 4녀를 두셨다.
(일등공신은 소헌왕후님으로 8남 2녀를 두셨다. 진짜 조선의 ‘다산왕’이신 왕비마마.)
여기서 후궁이란, 국왕과 정식으로 혼인을 한 부인들이다.
12] 조선에는 일부종사(一婦從事)의 국왕도 있었다??
: 에이~ 설마? 믿어지나요? 그렇지만 사실이다. 한 분도 아니고 여러 분이다.
①숙종의 부왕이신 18대 현종 은 오로지 조강지처 명성(明聖)왕후 김씨 뿐이셨다.
: 1651년 10살에 혼인하여 19세에 왕비가 되었고 슬하에 숙종, 외아들과 세 공주를 두셨다.
현종이 1674년 33세에 승하하신 후 아들 숙종의 정치에 관여해 많은 비판을 받다가 1683년 42세에
승하하였다. 두 분이 계신 곳은 동구릉에서 제일 멋진 정자각을 갖고 있는 ‘숭릉’이다.
어떻게?? 왕비는 1651~ 1674까지 즉 혼인 후 현종 승하 때 까지 23년간... 가능했을까?
실록 현종본의 기록을 보자. “비는 지능이 비상하고 성격이 과격하여 궁중의 일을 다스림에 거친
처사가 많았다.” 뒤집어 해석하면 답이 나온다. 명성왕후 완전 한 성격 한다는 소리다.
기득권이 기록한 현종개수본임에도 실록의 곳곳에 ‘한 성격’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길어질라~ 여기까지만 하자. 그래도 결론은 좌우지간 후궁은 한 분도 없었다는 야그다.
②현종의 손자이며 장희빈의 아들인 20대 경종 역시 오로지다.
: 원비 단의왕후 심씨는 1696년 11살에 세자빈이 되었지만 1718년 33세에 세자빈의 신분으로
승하하였다. 동구릉의 ‘혜릉’에 홀로 모시게 되었다.
계비 선의왕후 어씨가 뒤를 이어 1718년 14세에 세자빈이 되고, 4년 후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경종이 1724년 8월, 37세의 나이로 승하하자 겨우 20세 나이에 왕대비가 되었다.
왕대비가 되어 6년이 지난 1730(영조 6년) 역시나 아직까지도 많이 어리신 26세에 승하한다.
경종을 모신 곳인 석관동 옛 중앙정보부 뒷산의 ‘의릉’에 앞뒤로 나란히 모셨다.
경종은 본디 온순하며 병약하였다고 하고, 속설로는 모친 장희빈이 사약을 받을 때 당시 세자의
‘심볼’을 상하게 하여 씨 없는 감자를 만들었다고도 하나 경종은 오로지 두 분의 왕비마마만
계셨을 뿐 슬하에 자식은 물론 후궁도 단 한 명도 없었다.
위의 현종과 경종 두 분은 퍼펙트하게 후궁에 대한 기록상 전과(?)는 전혀 없이 깨끗하다.
③조선의 마지막 군주 27대 순종황제(1874~ 1926, 52세).
:: 고종과 명성(明成)왕후의 적차남으로 4세에 황태자, 1907년 일제의 강요로 퇴위한 고종의 뒤를
이어 24세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지만, 곧 이어 1909년 기유각서에 이어 재위 3년 만에
일본에 합방되면서 비운의 조선왕조 마지막 군주가 되고 말았다.
원비 순명황후 민씨는 11세에 혼인 후 황태자비까지 책봉되었으나 1904년 춘추 33세로 승하한다.
처음 현 성동구 어린이대공원 내 '유강원'으로 모셨다가, 1926년 순종황제 승하 후에 ‘유릉’에
합장으로 모셨다. (어린이대공원 인근의 '능동'이란 지명이 여기서 나왔다.)
조선의 마지막 국모 순정황후 윤씨는 1906년 13세에 동궁계비가 되었다.
순종황제의 즉위로 국모가 되셨고, 한일합방 당시 어전회의를 엿듣고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었다는
일화로 유명하시다. 합방 후 ‘이왕(李王)’의 부인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 거처하셨다.
순종은 1926년 승하하셔 국장으로 금곡리 ‘유릉’으로 모셨고, 조선의 마지막 국장으로 치러진
계비 순정황후의 장례식은 1966년 1월에 거행되어 ‘유릉’에 삼합장으로 모셨다.
순종황제 역시 경종과 마찬가지로 두 분의 황후마마만 계셨을 뿐 자식을 두지 못하였으며, 후궁
역시 한 분도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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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역대 왕비들의 기록
1] 자식을 가장 많이낳은 왕비는?
: 소헌왕후 심씨 8남 2녀(세종대왕의 정비)
2] 자식을 가장 많이 낳은 후궁은?
: 숙의 홍씨 7남 3녀(성종대왕의 후궁)
3] 가장 짧게 살았던 왕비는?
: 장순왕후 한씨, 공혜왕후 한씨 17살(둘다 한명회의 딸, 예종대왕,성종대왕의 정비)
4] 투기가 심했던 왕비 셋은?
: 폐비윤씨(성종대왕의 계비,연산군의 모)
문정왕후 윤씨(중종대왕의 계비, 명종대왕의 모)
원경왕후 민씨(태종대왕의 정비, 세종대왕의 모)
5] 짧게 살았던 대군 다섯은?
: 의소세손(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장자... 3살에 죽음)
명성황후의 첫째아들(명성황후와 고종태황제의 장자... 사흘만에 죽음)
명성황후의 셋째아들(명성황후와 고종태황제의 셋째아들)
명성황후의 넷째아들(명성황후와 고종태황제의 넷째아들)
명성황후의 다섯째아들(명성황후와 고종태황제의 다섯째아들)
6] 가장 불쌍한 왕 둘은?
: 제 6대 단종대왕(믿었던 숙부 세조에게 17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함)
제 15대 광해군 (후궁출신이어서 조정에 믿을 사람이 없었고 덕이 없었기에 폐출 당함,,,
게다가 역사에 나쁜사람으로 남음)
7] 가장 일찍 자식을 본 왕은?
: 제 8대 예종대왕 ( 12세에 장순왕후 한씨에게서 아들 인성대군을 얻음)
8] 가장 비운의 왕비와 후궁은?
: 폐비 윤씨(성종대왕의 계비. 연산군의 모. 투기로 인하여 사사됨)
희빈 장씨(숙종대왕의 계비이자 후궁. 경종의 모. 투기로 인하여 사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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