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풋살

[스크랩] 껍질을 깨고 나온 열아홉 소년 이청용

블랙썬 2007. 6. 29. 12:48

   어린 시절 집 앞 마당에는 제 이름을 딴 나무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그 나무 앞에 저를 세워놓곤 했죠. “3cm나 자랐네? 우리 딸 다음 달에는 얼마나 더 자랄까? 빨리 나무만큼 커야지.” 그렇게 저는 나무와 함께 자랐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저의 성장을 대견스러워하셨고요.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은 무릇 그런 법이랍니다. 하지만 그땐 너무 어렸나봅니다. 그 마음을 채 헤아리지 못했으니까요.
 

 혹시 2006년 3월 12일을 기억하시나요? 그날은 K-리그 개막전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또한 프레스 카드라는 걸 처음으로 들고 갔던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답니다. 기자 데뷔전을 치룬 날이니까요. 프레스 출입구를 찾기 못해 혼자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두 바퀴나 돌았던 기억도 납니다.
 

 물어 물어 겨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느새 선수들은 에스코트 키즈 손을 잡고 필드 안으로 들어서더군요. 그때 낯선 얼굴 하나가 보였습니다. 출전선수 명단을 살펴봤습니다. 이청용.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프로에 입단한지 벌써 3년이나 됐다고 했지만 평소 2군리그를 챙겨보지 않던 제겐 무척이나 생경한 선수였죠. 설렘과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K-리그 데뷔전을 치룬 열아홉 소년, 이청용. 그는 그렇게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날로부터 꼭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침부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던 지난 3월 4일. 귓가를 스치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상암 잔디를 적시던 봄비만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아마 이청용 선수에게는 더 그랬겠지요. 조금은 먼 미래에 이뤄질 거라 생각했던 데뷔골을 터뜨린 날이니까요. 지난 1년 동안 잠시 잊고 있던 이 미완의 청춘은, 봄비 속에서 아름답게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작년 전북과 치렀던 홈 개막전이 생각납니다. 당시 그는 경기 초반 받은 옐로우 카드를 의식했는지 다소 소극적인 모습으로 뛰었습니다. 결국 전반 29분 한태유 선수와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라커룸으로 들어가던 그 뒷모습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껍질을 깨고 나온 지금의 모습이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네요. 한없이 작고 여리게만 봤던 존재가 어느새 이렇게 자랐으니 말입니다.
 

 작은 꽃씨가 바람을 타고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는 모습은 말없이 지켜보는 이에겐 무한한 충만감을 안겨줍니다. 문득 그 옛날 제 어머니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다음 달에는 얼마나 더 자랄까?”라고 묻던 어머니처럼 그에게 묻습니다. “여기서 얼마큼 더 자라 우리를 또다시 놀라게 할 생각인가요?”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K-리그 최대 화두는 이청용 선수입니다. 리그가 개막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지만 그 기간 동안 이청용 선수가 보여준 모습들은 또래 선수들의 수준을 초월했다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합니다.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그의 이름이 검색순위 상위에 오르기 시작됐고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청용 선수는 특유의 묵묵함으로 애써 넘어가려고 합니다. “요즘 너무 좋겠어요”라는 말에도 그저 “아니에요”라고 답할 뿐입니다. 사실 이청용 선수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꼭 한번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작년에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운동은 원래 힘들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1군에 있다 다시 2군으로 내려갔을 때, 그땐 참 힘들었어요. 처음엔 제가 못해서 간 거였으니까 괜찮았는데 사람들이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걱정해주는 그 마음은 알겠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이게 안 괜찮은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속상한 마음도 들고… 혼자서 잘 이겨내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여러 말들이 들려오니까 마음이… 그랬어요.” 
 

 소년, 이청용은 열여섯이란 어린 나이에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자 프로에 왔습니다. 축구, 그 하나만을 생각하며 뛰어든 것이죠. 고민은 사치에 불과했고 애써 축구화 끈을 조여매여 외면해야만했습니다. 소년에게 미래는 안개 속의 풍경과도 같았고 자유는 내일을 위해 저당 잡힌 상태였습니다. 오늘 쉬면 내일 뛰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작은 일탈조차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 여름 FC서울이 컵대회에서 우승했던 날에도 모두들 건배를 외치며 즐거워했지만 이청용 선수는 조용히 숙소로 돌아갔답니다. ‘하루쯤은 괜찮지 않겠어?’라는 유혹을 뒤로 하고 말이죠. 그날 밤에도 잠들기 전, 언제나처럼 야간조명 아래에서 홀로 공을 찼죠. 그렇게 매일 다시 1군 무대에서 뛸 그날을 꿈꿨습니다.
 

 “축구하는 게 그냥 좋았어요. 아직도 제가 어떻게 해서 프로선수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공차는 게 좋았을 뿐인데… 지금도 그래요. 전 이제 스무 살이에요. 그건 말이죠 이제 시작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에요.” 그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지금의 관심이 버거운 짐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일찍 프로에 뛰어든 탓에 어른스럽게 보이지만 그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소년일 뿐입니다. “중학교 때 전교생의 응원을 받으며 결승전에서 뛰었던 날이 제일 신났어요. 다음 날 피곤해서 수업 시간에 졸았는데 선생님들도 그냥 넘어가주시고 학교 친구들도 축구부 최고라고 축하해주고… 지금껏 축구하면서 가장 즐겁게 뛴 경기였어요.” 덧니까지 보이며 웃었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술은 한 번도 입에 대본 적 없는데… 앞으로도 그래야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축구 그만 두면요? 어렸을 때부터 빵을 너무 좋아했어요. 빵집 주인이 되고 싶어요!” "밥도 잘 먹어요. 살이 안 쪄서 그렇죠.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어요. 김치찌개 있으면 밥 세 그릇 뚝딱이에요.”  “여행 많이 다녀보셨어요?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았어요? 축구만 하고 살아서 여기 저기 다녀본 적이 없어서 궁금한 게 많아요. 참. 저는 꼭 한번 홍콩에 가보고 싶어요.”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축구 하나만 생각하며 뛰었기에 하고 싶은 것도 모르는 것도 참 많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인지 모릅니다.사실 마음 한편에는 지금의 관심과 열광이 금세 돌변하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그런 순간과 과정들을 꽤 많이 봤으니까요. 그러다 혹 다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한번 부러진 민들레 줄기도 낫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자연이 그럴 지언데 사람 역시 예외일 수는 없겠죠. 
 

 “항상 좋을 수만은 없어요. 갑자기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겠죠. 주전은 언제든지 바뀌는 법이고요. 언젠가는 그런 순간과 만날 거예요.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겨내야죠. 혼자서 이겨내는 수밖에 없어요. 누구도 대신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껏 잘 극복했으니까 앞으로도 잘 할 거라고 믿어요. 저는 제 자신을 믿어요.”
 

 그리고 덧붙여 말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기대가 커져가는 건 사실이에요.”
 

 어쩜 그건 우리가 이청용 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또 얼마나 자란 모습으로 우리를 경이감에 빠뜨릴까요? 아이의 성장에 웃음 짓던 어머니의 마음으로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습니다.

 

 

출처 : 꿈을 쓰는 사람
글쓴이 : Helena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