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가 개창된 지 100년 무렵, 조선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성종과 연산군 그리고 중종의 3대 75년간 ‘조선 최초의 사화, 그리고 조선 최초의 반정’이 등장할 만큼 왕과 신하를 둘러싼 정치투쟁은 너무도 절박한 것이었다.
국가 체제의 완성을 이룩한 성종, 그에 대한 반발과 균열을 보인 연산군, 다시 왕권을 둘러싼 체제 정비를 시도한 중종까지 이 시기는 조선왕조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정치 변혁의 시대였다.
새로운 정치 시대의 개막, 투쟁하는 왕과 신하!
― 균형 정치와 신권臣權에 대한 폭력적 제압, 그리고 왕을 바꾼 신권의 등장
태종(왕자의 난)과 세조(단종 폐위)로 대표되는 조선 전기의 불안정한 역사는 왕위 계승의 치열한 분쟁이었지만, 조선의 왕실과 주요 관료들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치유하면서 점차 체제를 안정시켜갔다. 이후 성종대 『경국대전』의 완성을 기점으로 조선왕조의 정치사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성종ㆍ연산군ㆍ중종은 건국 이래 거듭된 공신 책봉으로 비대해진 훈구대신 세력들과 비교적 젊고 혁신적인 삼사의 관원들이 포진한 가운데 치열한 투쟁을 통해 왕권을 확립하면서 정국을 끌고 갔다. 이 시기 정치 투쟁은 형식적인 면에서 완결된 정치 제도를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하고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세 왕과 신하들의 정국 운영을 둘러싼 권력 관계는 이후 조선왕조의 정치사를 압축한 중요한 특징들을 지녔다.
저자는 이 시기를 ‘대신에 대한 성종의 견제, 신권 우위에 대한 연산군의 저항, 훈구세력에 대한 중종의 개혁’으로 평가하며, 세 왕이 각기 당대의 정치판을 대상으로 정립하고자 한 왕권과 정치 시스템에 주목하였다. 특히, 이 시기의 신권을 ‘훈구대신’과 ‘사림세력’으로 나누는 기존의 이분법적 구도에 반대하면서, 이들을 ‘대신(의정, 찬성, 참찬)’과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라는 직책에 따라 주체적으로 대응했던 정국 운영 주체로 호명하였다. 그들이 당시의 정치 무대에서 단지 고정적인 캐릭터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 당시의 역동적인 정치적 사건에 따라 주체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들로 다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국 운영 주체를 새로 분석한 정치사적 고찰
― 조선 정치사는 훈구 - 사림의 대립이 아닌 왕 - 대신 - 삼사의 역동적 정치 과정이었다!
성종대 홍문관의 언관화로 수립된 삼사 체제는 이후 조선 역사 내내 큰 영향을 준 중요한 변화였다. 왕-대신-삼사로 대별되는 정국 운영의 주체들은 서로 기본적 임무와 성향이 상당히 달랐다. 왕은 왕정의 최고 권력자로 대부분의 사안에서 최종적이며 최대의 결정권과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신은 나이와 품계에서 원숙한 위치에 오른 관료들로, 국정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운영하는 데 대체로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간쟁과 탄핵의 임무를 맡은 삼사는 달랐다. 그들은 대신보다 젊고 품계도 낮았으며,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적 성향이 강했다.
성종ㆍ연산군ㆍ중종대의 정국 운영은 기득권세력인 ‘대신’과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왕’이 힘을 부여한 ‘삼사’가 삼각구도를 이루면서 균형과 균열을 거듭하였다. 그 결과 <왕-대신-삼사>라는 정립鼎立구도의 정치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저자는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이 시기에 일어난 세 번의 사화(무오ㆍ갑자ㆍ기묘사화)에 대해서도 그 본질적 성격을 새로이 밝혀내고자 하였다. 즉, 수구와 개혁, 중앙과 지방, 대지주와 소지주 등으로 정치적 성향과 사회경제적 기반까지 이분화한 훈구-사림세력에 대한 통설과 사화를 단순히 사림세력의 시련으로 파악하는 시각에 대해서 저자는 사화 피화인에 대한 검토와 당시 정국 주도세력인 대신과 삼사에 대한 분석 등으로 사화는 왕의 권한에 대한 삼사의 월권과 능상을 교정하고자 한 폭력적 정치 숙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양한 정치적 갈등과 해결, 발전과 한계를 경험했던 성종ㆍ연산군ㆍ중종 75년간의 정치적 역정의 최종 결과는 삼사의 위상이 확립됨으로써 왕-대신-삼사의 정치적 정립구도가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왕권과 신권 사이의 견제와 협력의 역사를 ‘정치적 정립구도’라는 시각으로 파악한 저자는 이 시기의 정치사를 흥미롭게 읽는 데 그치기보다는 그 시대가 안고 있던 역사적 고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이 책에서 드러내고자 했다.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세 왕의 역정
- 유교정치의 모범을 보인 성종
성종 왕권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비폭력적 성격에 있다. 그의 치세에는 신하들에 대한 폭력적 숙청이 거의 없었다. 이는 성종이 『경국대전』에 규정된 각 관서의 기능을 최대한 보장하는
수준 높은 유교정치를 궁극적인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개방적인 인사 정책, 그리고 ‘경연정치’라는 정치제도가 중요한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이런 요소에 힘입어 여러 관서들, 특히 삼사는 『경국대전』에 보장된 본연의 직능을 현실정치에서도 처음으로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조선은 왕권의 안정을 바탕으로 대신과 삼사의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수준 높은 유교정치가 구현되었다. 물론 치세 후반 대간의 지나친 월권으로 발생한 정치적 갈등과 균열을 말끔히 해소하지는 못한 한계도 있지만, 그에 대한 폭력적 해결을 끝까지 자제한 성종의 통치는 건국 후 1세기를 거치면서 조선왕조가 도달한 하나의 정치적 정점이었다.(1장)
- 절대왕권을 꿈꾸며 폭군의 길을 간 연산군
성종은 안정된 정치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그의 아들 연산군은 기존의 모든 시스템을 부정하려고 했다. 재위 초반부터 연산군은 여러 사안에서 삼사와 충돌하였으며, 그 와중에 피를 부르는 ‘사화’가 벌어졌다. 신권 우위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연산군의 폭정과 사화는, 왕권과 신권의 충돌이 빚은 또 하나의 정치적 실현태라 할 수 있다.
조선왕조가 처음 경험한 사화라는 초유의 정치적 파탄은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그것은 조선에서 어떤 의미 있는 정치적 변화는 국왕ㆍ대신ㆍ삼사의 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삼사의 위상과 정치적 정립구도는 연산군대의 모진 시련을 통과하면서 더욱 견고하게 단련되었다.(2장)
- 반정, 다시 개혁을 꿈꾼 중종
중종은 연산군대의 정치적 파탄을 수습해 왕권을 회복하고 안정된 정치를 다시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시도했다. 기묘사림을 비롯해 김안로 일파의 등용과 그들을 통한 정국 운영은 그러한 모색의 대표적인 성과와 한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중종이 자신의 왕권을 충분히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집권 초반의 정국공신부터 기묘사림과 사화를 주도한 대신들, 그리고 권신 김안로에 이르기까지 중종은 대체로 왕권의 영향력이나 정치적 주도권을 위임한 상태였다. 결국 중종대는 연산군의 폭정을 개혁해 중흥을 이룬다는 반정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 변화를 모색하면서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남겼던 기간이었다.(3장)
□ 성종ㆍ연산군ㆍ중종 75년간의 주요 사건
1469. 11.성종 즉위, 수렴청정 실시
1471. 3.좌리공신(75명) 책봉
1476. 1.수렴청정이 끝나고 성종의 친정이 시작됨
5.원상 혁파
1477. 11. 이심원의 훈구대신 탄핵, 남효온의 소릉 복위 상소
1481. 6.압구정 사건으로 한명회 곤경에 처함
1482. 8.폐비 윤씨를 사사함
1485. 1.『경국대전』 완성
1487. 11.한명회 사망
1490. 7홍문관의 탄핵으로 대간 전체 사직
1492. 8.김종직 사망
1493. 10.대사헌 허침과 우의정 허종의 갈등
1494. 12.성종 붕어, 세자(연산군) 즉위
1497. 7.정언 조순, “노사신의 고기를 먹고 싶다”는 발언 제기
1498. 7.무오사화 발발
1504. 3.갑자사화 발발
1506. 2. 도성 밖 금표의 한계를 정함
1506. 9.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켜 진성대군(중종)을 옹립함. 정국공신 책봉
1515. 4.조광조, 조지서 사지로 관직에 나옴
1518. 11.조광조, 대사헌이 됨
1519. 11.기묘사화 발발. 한 달 뒤 조광조, 전라도 능주에서 사사됨
1524. 11.이조판서 김안로, 영의정 남곤 등의 탄핵으로 파직ㆍ유배됨
1531. 윤6.김안로, 중앙조정에 복귀
1535. 3.김안로, 좌의정이 됨
1537. 10.김안로를 사사하고 그 일당을 유배 보냄
1544. 11.중종 붕어
책소개
조선조 사화와 반정의 시대를 재조명하다
<사화와 반정의 시대>는 조선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정치 변혁의 시대에 펼쳐진 권력 투쟁을 살펴보는 책이다. 국가 체제를 완성한 성종, 그에 대한 반발과 균열을 보인 연산군, 다시 왕권을 둘러싼 체제 정비를 시도한 중종까지 3대 75년간의 정치 투쟁을 다루었다. 세 왕과 신하들의 권력 관계는 이후 조선왕조의 정치사를 압축한 중요한 특징들을 지녔다.
저자는 세 왕이 각기 당대의 정치판을 대상으로 정립하고자 했던 왕권과 정치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의 신권을 '훈구와 사림'으로 나누는 기존의 이분법적 구도에 반대하면서, 이들을 '대신과 삼사'라는 직책에 따라 대응했던 정치적 주체로 호명한다. 즉, 그들을 당시의 역동적인 정치적 사건에 따라 주체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들로 보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기존의 '훈구와 사림'세력에 대한 통설을 재검토하며, 이 시기에 일어난 세 번의 사화에 대한 본질적인 성격을 밝히고자 했다. 왕권과 신권 사이의 견제와 협력의 역사를 '정치적 정립구도'라는 시각으로 파악하면서, 그 시대가 안고 있던 역사적 고뇌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다.
목차
여는 글
책을 시작하며 - 조선 최초의 사화와 반정의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1장 성종 - 왕권의 안정, 그리고 균열의 시작
1. 변형된 왕정(즉위년∼7년)
갑작스러운 즉위 / 수렴청정과 원상제의 시행 / 훈구대신들의 영향력
2. 균형과 견제(8∼17년)
친정을 시작하다 / 대신들에 대한 압박 / 몰리는 한명회 / 대간의 부상 / 균형과 견제 /
월권의 조짐 / 국왕의 고민
3. 균열의 시작(18∼25년)
홍문관의 기능 확대 / 제3의 언론기관, 홍문관 / 회복되는 대신의 위상 / 갈등의 고조 /
국왕의 경고 / 성종대의 정치적 유산
4. 성종의 왕권 - 비폭력적 유교정치의 수행
2장 연산군 - 절대왕권과 정치적 파탄
1. 능상에 대한 경고 - 무오사화(즉위년∼4년)
불편한 관계 / 대신과의 충돌 / 삼사의 능상을 교정하라 / 무오사화, 조선 최초의 사화
2. 고립된 국왕의 무차별적 숙청 - 갑자사화(5∼10년)
제어받지 않는 왕권 / 패행과 사치 / 삼사의 뜨거운 간쟁 / 대신, 삼사와 손을 잡다 /
고립되는 국왕
3. 폭정과 폐위(11∼12년)
광기 어린 폭정 / 불안해하는 폭군 / 반정과 폐위
4. 연산군의 왕권 - 폭압적 왕권의 행사와 정치적 파탄
3장 중종 - 중흥과 개혁의 모색
1. 추대된 국왕(즉위년∼9년)
편중된 권력 / 삼사의 도전 / 삼대장과의 갈등 / 재연되는 능상
2. 급진적 개혁과 실각 - 기묘사화(10∼14년)
기묘사림의 등장 / 개혁의 득실
3. 역전된 정국(15∼25년)
다시 우위에 선 대신들 / 살아나는 언론 / 변질의 단초들
4. 김안로의 집권과 삼사의 변질(26∼32년)
김안로의 시대 / 국정의 난맥상 / 사유화된 삼사
5. 중흥을 위한 마지막 노력(33∼38년)
중흥을 향한 의지 / 개혁의 한계와 성과
6. 중종의 왕권 - 인사 정책의 한계, ‘사림정치’의 지향
책을 마치며 - 삼사의 위상 확립과 정치적 정립구도의 형성
참고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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