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운천군파 (비금소종회)

이의방과 전주이씨

블랙썬 2012. 12. 24. 13:35

79. 이의방과 전주이씨

 

이의방(李義方. ?~1174)은 고려 때 초대 무신집권자로 본관은 전주다. 의종 말기에 산원(散員)으로 견룡행수(牽龍行首)를 지냈다.

그는 정중부, 이고 등과 함께 1170년(의종 24) 무인정변을 일으켜 성공했다. 그 뒤 대장군· 전중감· 집주를 제수받는 등 몇 단계씩 뛰어넘어 문· 무의 고위관직을 차지했다.

이고가 법운사의 승려 수혜, 개국사의 승려 현소 등과 결탁하여 그를 제거하려는 모의를 하자, 이고를 먼저 죽였다. 권력의 정상에 선 그는 정중부 등 온건무장 세력과 타협하여 중방(重房)을 중심으로 정치를 했다.

1173년(명종 3) 왕의 딸을 궁주(宮主)로 봉하여 축하연이 벌어졌을 때 이의방은 왕도 의식하지 않고 노래하며 놀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

그는 귀법사의 승려들이 성으로 침입하여 선유승록 언선을 살해하자, 직접 군사 를 이끌고 진압하기도 했다.

어느 날 중광사· 홍호사· 귀법사· 홍화사 등의 승려들이 이의방 형제를 죽이려고 침입했다. 이의방은 부병을 모집하여 승려들을 죽이고 쫓아낸 뒤 성문을 수비하여 승려의 성문출입을 일체 금지시켰다. 이때 그 절들을 허물려고 했으나 그의 형 이준의가 저지하며 꾸짖었다. 이 때 형을 죽이려고 했으나 문극겸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그 뒤 좌승선이 되고 1174년 3월에 그의 딸을 태자비로 삼은 뒤 더욱 국정을 함부로 하면서 정중부와의 사이도 나빠졌다.

그해 12월 서경유수 조위총이 이의방과 정중부를 토벌하기 위해 거병했다. 토벌군을 출동시키는 혼란 중에 정중부의 아들 정균의 명령을 받은 승려 종참에게 죽음을 당했다.

정중부에 의해 그의 형제와 일파도 모두 살해당했다. 1176년에는 이의방의 문객들이 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정중부의 암살을 모의하다가 섬으로 추방당했다.

한편 태조 이성계는 이의방의 바로 아랫 동생인 이린(李隣)의 6대손이다. 이린은 이양무를 낳았고, 그의 아들 이안사가 지금의 간도 지역에 정착, 원의 관리로 들어가 기반을 쌓았다. 이후로 아들 이행리, 손자 이춘, 증손자 이자춘까지 대대로 원의 관리를 지내며 성장하게 된다.

세종대왕의 용비어천가 제1장에 등장하는 해동육룡(海東六龍)은 이성계와 이방원을 비롯하여, 세종대왕의 6대조가 되는 이안사(목조), 이행리(익조), 이춘(도조), 이자춘(환조)을 말한다. 무신정권의 이의방은 태조 이성계의 6대조인 셈이다.

이린- 이양무- 이안사- 이행리- 이춘- 이자춘-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세종대왕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주이씨의 시조는 이한(李翰)이다. 그는 전주에 토착해온 명문 태생으로 신라 태종 무열왕의 10세손 군윤(軍尹) 김은의의 딸과 결혼했으며 문성왕(839-856)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전주이씨의 역사에서 확인되는 인물은 무신정권 초기에 무인이었던 이린(李璘)부터이다. 그는 시중을 지낸 문극겸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린은 무신난 주도자의 한 사람인 이의방의 동생이다.

그는 무인집권 초기에 형 이의방과 함께 권력을 장악한 소수 무인에 속했다. 그의 장인인 문극겸은 무신 난 직후에도 왕의 측근인 우승선어사중승을 역임했다. 명종3년 김보당의 무인정권에 대한 반대로 일어난 계사의 난에 많은 문신이 살육 당할 때에도 문극겸은 이의방의 두둔으로 무사했다.

이린의 아들 이양무는 장군을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뚜렷이 나타난 것이 없다. 그의 아들이 이안사로 이성계의 고조부이다. 이때 이안사는 본관지인 전주로 돌아와 있었다.

태조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까지가 선원세계에 들어가고, 시조부터 17세까지는 선원선계라 한다. 왕은 “불감조기조(不敢祖其祖)”라 하여 조상으로 칭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러 왕자, 즉 대군(大君)이나 군(君)을 파조로 하여 분파했다. 이를 선원파계라 한다.

이안사 이전의 선계에서 갈라진 분파로는 15세조 이단신을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 이안사의 할아버지인 이린의 동생 이거를 파조로 하는 평장사공파, 이안사의 동생인 이영습을 파조로 하는 주부동정공파가 있다.

이성계가 태조로 즉위한 후 추존 4조(祖) 사이의 인물을 파조로 하는 분파로는 먼저 이행리(익조로 추존) 대에서 이어선을 파조로 하는 안천대군파, 이진을 파조로 하는 안원대군파, 이정(李精)을 파조로 하는 안풍대군파, 이매불을 파조로 하는 안창대군파, 이구수를 파조로 하는 안흥대군파의 5대군파가 있다.

다음으로 이춘(도조로 추존) 대에서는 7대군파가 나누어졌다. 이안(李安)을 파조로 하는 함녕대군파, 이장(李長)을 파조로 하는 함창대군파, 이송(李松)을 파조로 하는 함원대군파, 이원(李源)을 파조로 하는 함천대군파, 이고태(李古泰)를 파조로 하는 함릉대군파, 이전 을 파조로 하는 함양대군파, 이응거(李應巨)를 파조로 하는 함성대군파가 있다.

이자춘(환조로 추존) 대에서는 이자흥을 파조로 하는 완창대군파, 이자선을 파조로 하는 완원대군파, 이평 을 파조로 하는 완천대군파, 이종(李宗)을 파조로 하는 완성대군파의 4대군파가 있다.

태조 이성계의 형제인 이원계의 후손이 완풍군파, 이화의 후손이 의안대군파로 나누어진다.

태조 이후 고종 이전까지에 걸쳐 대군(大君)ㆍ군(君)을 파조로 하는 파가 99파여서 모든 분파 수는 123파이다. 그러나 대군ㆍ군 중에서 미혼으로 마쳤거나 후사가 없어 절손된 경우가 20명이 되므로 전체 분파 수는 20파 정도가 적다.


 

 

출처 : 정복규의 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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