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이천우와 전주이씨
이천우(李天祐.?~1417)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형인 이원계의 아들이다. 본관은 전주이다.
그는 조선 개국과 제1차, 제2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웠으며 병조판서, 이조판서, 서북면 도체찰사 등을 지냈다. 후에 원산부원군에 진봉되었으며, 태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이천우는 1369년(공민왕 18) 야인 동녕부의 수령으로 있다가 이성계 휘하에 들어가 여러 번 왜구를 토벌했다. 1392년(태조 1)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웠다.
1394년 상의중추원사, 1396년 강원도 조전절제사, 1398년 중추원동지사가 되었으며 같은 해 제1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정사공신 2등으로 완산후(完山侯)에 봉해졌다.
1400년(정종 2) 중추원판사를 거쳐 삼군부지사 때 제2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좌명공신 2등이 되고 안주 도절제사를 역임한 뒤 1403년(태종 3) 완산군(完山君)에 개봉되었다.
판사평부사를 거쳐 1407년 정조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의정부 찬성사가 되고 1409년 병조판서로 도진무도총제를 겸했다. 후에 의흥부판사에 이어 재차 찬성사가 되어 판의용순금사사를 겸했다.
1413년 이조판서가 되고 서북면 도체찰사로 나갔다. 1414년 원산부원군에 진봉, 의금부도제조를 거쳐 찬성사가 되었다. 태종의 묘정에 배향, 영광의 무장영당에 제향되었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양리에는 그의 초상화 1폭과 매가 조각된 목판 1점이 있다.
한편 전주는 본래 백제의 완산(完山)이다. 신라 진흥왕 16년 완산주(完山州)를 두었다. 경덕왕 15년에는 지금 이름으로 고쳐 신라 9주(州) 중의 하나로 하였다. 고려조 성종 12년 승화절도안무사(承化節度按撫使)로 하였고, 현종 9년에는 안남대도호부(安南大都護府)로 승격시켰다가 다시 전주목(全州牧)으로 고쳤다.
조선 건국 후 왕실의 고향이므로 완산유수부(完山留守府)로 승격시켰고, 태종 3년 지금 이름으로 다시 개칭하였으며 세조 때는 진(鎭)을 두었다. 1895년 군(郡)이, 1935년 부(府)로, 1949년 시(市)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출처 : 정복규의 역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