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운천군파 (비금소종회)

이수광과 전주이씨

블랙썬 2012. 12. 24. 13:38

82. 이수광과 전주이씨

 

이수광(李睟光.1563~1628)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지봉(芝峯)이다.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희검(李希儉),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1585년(선조 18) 별시문과에 급제,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전적을 거쳐 호조와 병조의 좌랑 겸 지제교를 지냈고, 성절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북도선유어사(北道宣諭御史)가 되어 함경도 지방에서 민심을 돌이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597년에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진위사로 2번째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안남(安南.지금의 베트남)의 사신과 교유했다. 1605년에 안변부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사직하고 돌아와 1607년 홍주목사로 부임했다.

1611년 왕세자의 관복(冠服)을 청하는 사절의 일원으로 3번째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유구(琉球)와 섬라(暹羅.지금의 타이)의 사신을 만나 그들의 풍속을 기록했다. 1613년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사직했다가, 1616년 순천부사가 되었고 임기를 마친 후에는 관직을 사양하고 수원에서 살았다.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자 도승지로 관직에 복귀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왕을 공주로 호종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강화로 갔으며, 이듬해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죽었다.

이수광은 민본주의 정치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정치사상은 장문의 시무책인 〈조진무실차자〉에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① 권학지실(勸學之實), ② 정심지실(正心之實), ③ 경천지실(敬天之實), ④ 휼민지실(恤民之實), ⑤ 납간쟁지실(納諫諍之實), ⑥ 진기강지실(振紀綱之實), ⑦ 임대신지실(任大臣之實), ⑧ 양현재지실(養賢才之實), ⑨ 소붕당지실(消朋黨之實), ⑩ 칙융비지실(飭戎備之實), ⑪ 후풍속지실(厚風俗之實), ⑫ 명법제지실(明法制之實) 등 12조로 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허(虛)가 아닌 실(實)을 강조함으로써 임진왜란 후 흔들리던 국정과 사회 전반에 걸친 시정의 폐해를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덕치주의의 구현을 강력히 요구하면서도 민(民)에 대해 진취적인 입장을 보였다. 종래의 주자학적 유교 이념과는 차이가 있다.

이수광의 학문은 일종의 백과전서인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에는 일본, 안남, 유구, 섬라 등 동양 각국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유럽에 대한 기술도 실려 있다. 영국의 위치, 기상, 생활양식, 군함의 구조와 무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마테오리치가 지은 〈천주실의〉를 소개하고 천주교 교리와 교황에 대한 설명도 있다. 이 책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사상은 그 후 실학자들의 저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봉유설은 권1에 천문(天文)ㆍ시령(時令)ㆍ재이(災異), 권2에 지리(地理)ㆍ제국(諸國), 권3에 군도(君道)ㆍ병정(兵政), 권4에 관직(官職), 권5에 유도(儒道)ㆍ경서(經書), 권6에 경서, 권7에 경서ㆍ문자(文字), 권8∼14는 문장(文章), 권15는 인물ㆍ성행(性行)ㆍ신형(身形), 권16은 언어(言語), 권17은 인사(人事)ㆍ잡사(雜事), 권18은 기예(技藝)ㆍ외통(外通), 권19는 궁실(宮室)ㆍ복용(服用)ㆍ식물(食物), 권20은 훼목(卉木)ㆍ곤충(昆蟲)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수광은 실용정신과 민본정신 등 무실(務實)의 정신을 역설했다. 공리공론만을 일삼던 학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이익(李瀷)의 <성호사설>,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 이의풍의 <고금석림(古今釋林)>, 정동유의 <주영편(晝永編)>, 유희의 <물명고(物名考)> 등이 나왔다.

한편 전주이씨는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까지가 선원세계에 들어가고, 시조부터 17세까지는 선원선계라 한다.

성씨를 이를 때 제왕(帝王)은 “불감조기조(不敢祖其祖)”라 하여 조상으로 칭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러 왕자, 즉 대군(大君)이나 군(君)을 파조로 했다. 이를 선원파계(璿源派系)라 한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이안사의 선계(先系)에서 갈라지는 파와, 그 이후에서 갈라지는 파를 합하여 모두 123파가 된다.

이안사 이전의 선계에서 갈라진 분파로는 15세조 이단신(李端信)을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 이안사의 할아버지인 이린의 동생 이거를 파조로 하는 평장사공파, 이안사의 동생인 이영습을 파조로 하는 주부동정공파가 있다.

이성계가 태조로 즉위한 후 추존 4조(祖) 사이의 인물을 파조로 하는 분파로는 먼저 이행리(익조.翼祖) 대에서 이어선을 파조로 하는 안천대군파, 이진을 파조로 하는 안원대군파, 이정(李精)을 파조로 하는 안풍대군파, 이매불을 파조로 하는 안창대군파, 이구수를 파조로 하는 안흥대군파의 5대군파가 있다.

이춘(도조.度祖) 대에서는 7대군파가 나누어졌다. 이안(李安)을 파조로 하는 함녕대군파, 이장(李長)을 파조로 하는 함창대군파, 이송(李松)을 파조로 하는 함원대군파, 이원(李源)을 파조로 하는 함천대군파, 이고태(李古泰)를 파조로 하는 함릉대군파, 이전 을 파조로 하는 함양대군파, 이응거(李應巨)를 파조로 하는 함성대군파가 그것이다.

이자춘(환조.桓祖) 대에서는 이자흥(李子興)을 파조로 하는 완창대군파, 이자선(李子宣)을 파조로 하는 완원대군파, 이평 을 파조로 하는 완천대군파, 이종(李宗)을 파조로 하는 완성대군파의 4대군파가 나누어진다.

태조 이성계의 형제인 이원계(李元桂)의 후손이 완풍군파, 이화(李和)의 후손이 의안대군파로 나누어지는데, 이상이 모두 18개 파이다.


 

 

 

 

 

출처 : 정복규의 역사칼럼

 

 

 

 

 

 

 

 

 

 

 

 

 

 

'전주이씨 운천군파 (비금소종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학대사와 이성계(1) (2)   (0) 2012.12.24
대원군과 전주이씨   (0) 2012.12.24
이천우와 전주이씨   (0) 2012.12.24
이의방과 전주이씨   (0) 2012.12.24
이안사와 전주이씨  (0) 2012.12.24